밤이 깊었다.
거리 사이사이엔 가로등 불빛이 스며든다.
누군가의 손길이라도 다녀간 듯 하루가 다르게 공원은 봄을 품는다.
한 아름 붉게 물들여 재운 잎으로, 너울너울 걸음마다 인사를 건넨다.
사람들은 정지해 있었다.
앞서거나 뒤서지도 않았다. 뜬구름 같다고 생각했다.
청명하게 빛나는 밤하늘 아래, 스쳐가는 얼굴로는 티끌 하나 없이 웃음꽃이 만개하였다.
나는 빈 껍데기를 안은 몸으로 닮은 걸음을 몇 번 옮기다 전에 없이 아름다운 봄을 바라보며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실로 빈 껍데기였다.
변하지 않는 나무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거리에서 나를 마주할 때면 그렇게 여겼다. 이유도 별 볼 일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면 언젠가 보았던 연극이 떠올랐다. 익살스럽게 표정을 뭉그러뜨린 광대말이다. 마임도 감정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전달하기까지 배우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가. 그러나 아마추어를 무대 위에서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툭치면 스러질 듯 금시에 표정을 바꾸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가지가 많던 사람들이 거닐던 거리를 기억한다. 유난히 깨끗해진 무대는 더 이상 모두의 것이 아니다.
실로 빈껍데기와 같은 것이라 여겨졌다. 공동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우리들의 모습은 가지가 많다.
봄 내음이 코를 찌른다.
만개한 봄날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정경이었다.
아주 오래된 창고 같다고 생각됐다. 거미줄로 뒤엎여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비밀 공간 말이다.
그래도 사람이 곧 지냈는지, 마른 식물들이 이따금씩 숨으로 느껴졌다. 간혹 거미줄에 걸린 곤충들도 발견되곤 했다. 나는 이런 곳에선 살기 위해서 바짝 말라 생기를 잃은 식물의 진물이라도 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른 공기만이 맴돌 뿐이었다.
하루는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한참이나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를 바라보다 언젠가의 말처럼 감정을 따라 휘청여본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확함을 요구했다. 예를 들면 그런 것인데 버드나무를 보고 감상할 땐 어떤 표정을 짓는 것이 정답일까 - 와 같은 그런 것 말이다. 나는 질문들이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떨어지는 꽃잎을 눈에 담다, 눈이 마주칠 때면 환한 미소를 금시에 거둬내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이를 바라본다. 나는 더 이상 어떠한 감흥없이 하던 것을 마친다.
이게 그렇게 비현실적인 일인가요?
나 역시 잘못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을 몰아세운 것은 누구인가? 무수한 감정들에 정확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추어를 무대 위에서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며칠 뒤 소나기가 찾아왔다. 비가 내린 뒤의 봄은 처참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잎들은 이리저리 뒤엉켜 색이 바랬고, 앙상해진 나무는 계절을 잃은 듯 흉물이 되어 반겼다. 매일 걷던 거리가 참으로 볼품없다고 여겨졌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왜 몰랐을까요.
그들은 죽음에 확신이 있었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