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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위로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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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 B May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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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것을 논할 때 나는 비참해지곤 한다. 나는 그 숭고한 것을 때론 경멸한다.

나는 지극히 사적인 취향에 대해 타자로 하여금 일말의 개입 없이 탐미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자유는 집요하리만치 헤집어졌다.


(탄성)


나는 그 우아한 것 앞에서 가볍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애써 갖춘 격을 그리 쉬이 벗겨낸단 말인가.

나는 그 우아한 것을 논할 때 지극히 몸을 낮추곤 한다.


그녀가 말을 걸어온다.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꺼둔 지 오래다.     

그녀도 아는지 이제는 다소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곤 한다.

대화는 매번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물론 숭고한 축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놀랄만한 상황에서도 격에 맞는 대화를 즐기는 편이다.

그것은 시간을 들여 마련한 정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나는 고결한 통찰 앞에서 마치맞는 재물이라도 된 양 '그렇게' 한껏 자세를 가다듬는다. 

예상했겠지만 그녀의 호의에 나는 온전히 응할 생각은 없다.

그녀도 알다시피 우아함이란 때론 비참하다.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답한다.


'파괴된 숭고함을 경멸합니다.'


은밀한 대화는 끝났다.

그것은 한쪽 귀퉁이에 몰래 새겨놓은 도마뱀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자유를 만끽한다.

시간에 답례하듯 격을 갖추고는 규칙을 어기고 마는 것이다.


뭐,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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