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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위로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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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 B May 31. 2024

열등(劣等)





글을 다룬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세계가 싫다.

툭 던져 내어놓은 말에도 부산스럽다.

허다한 말에도 이렇다 할 환영 인사 하나 없다.

그것도 좀 에두르다.

가볍다. 가벼운 것이 걸끄럽다.

잡다한 것이 허다함에도 하나 쳐내는 일 없다.

가난하다.

보이지 않는 근본도 거슬린다. 

손에 쥔 건 죄다 보이지 않는 것들 뿐이다.


나는 까만 몰골이다.

까맣다는 것이 더러운가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나는 더러운 것이 싫다.

그래 싫어 담근 발도 서둘러 훔쳐내어 말린 볕으로 옮긴다. 

그런데도 까만 몰골이다.

근본이다.

나는 이렇다 할 근본이 없어 뒷걸음질 친다. 

근본이다. 


나는 이 많은 문제들을 안고 온종일 옆으로 눈을 부릅뜬 이들과 씨름한다. 

그 언젠가 근본 없는 것들에서 본 것뿐이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빛을 보는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볕이 잘 먹은 솜씨로도 세간의 입맛이나 돋구어 낸다.

세상은 아무 의심 없이 흘러간다.

나는 어쩐지 고리타분해졌다.


우리는 무엇에 부딪히고 있는 걸까.


거슬린다.

나는 속박된 채 무용하게 서 있다.

씻궈내지 못한 욕망에 대한 연민이 두렵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개운하지 않다.

흔적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란 그리도 잔인하다.

나는 나약한 것이 싫어졌다.


그럼에도 언어는 춤춘다. 

핥아내고, 닦아내고, 훔쳐낸다.

그것은 여전히 매끄럽고 고고하다.
고고한 심성으로 순종한다.                                                              


나는 염탐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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