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짓누르던 것들은 예고도 없이 종말 됐다.
흔적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는 그렇게 채워졌다.
'나는 죽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같은 자리를 지루하게 맴돌던 앵글은 마침내 구도를 바꿔 세운다.
매일 거닐던 공간의 위치가 달라졌고, 매번 보던 문구들이 사라져 있다.
쇼윈도에 걸린 제 키의 세배나 되는 커다란 포스터에는 매일 투쟁하던 낯익은 단어가 처음 보는 마냥 걸려 있다. 낯설다. 지나서던 행인들은 혀끌을 끌끌 거린다.
아려오는 것은 마음이었을까.
나는 유행 통신(한 때 유행하던 패션 전문 잡지)을 훑어내듯 멀뚱이 바라보던 제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결국은 놀라고야 만다.
보상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균등했다.
나는 소망하던 가벼운 차림에 선선한 바람을 날 것으로 맞이한다.
뜸을 들여 투덜대지 않는다.
나는 다시 빈 껍데기만 남았다.
건물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벽으로 번뜩이는 전광판만이 유혹을 멈추지 않는다.
건물 외벽이요, 내부 천장이며 그 기이하고 섬세한 배려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청유받은 대로 가방에 옷 가지를 채우던 나는 와락 화가 치솟는다.
빈 몸을 채우는 일이란 이리도 간단한 것이었던가.
저기 조심스럽게 건져 올린 여인의 행복이 보인다.
나는 무엇을 더해 채워야 할지 모르고 서성인다.
다리가 저려온다.
구슬퍼지는 것은 패전의 신호일까.
달콤한 청유란 이토록 뒷 맛이 덟고도 쓰다.
잠깐, 무얼 위해 투쟁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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