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속 Jun 05. 2024

사모님은 우릴 보고 웃지

  그녀는 사모님 앞에서 늘 작아졌다. 여유 있는 미소에 밝게 빛나는 피부. 딱 보면 아는 액세서리와 구하기 힘든 가방을 든 사모님의 모습에 위축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들에게 빌어먹는 것도 아닌데 작아지는 자신에게 가끔은 화도 났다.

  어차피 저들도 구린 똥을 싸고 남편과 싸운다라고 생각하면 쪼그라들었던 가슴이 조금은 펴졌지만 그때뿐.

  안타깝게도 그녀가 이런 환경에 놓인 건 망할 학군 때문이었다. 평범한 중산층 삼십 평대 아파트에서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오며 그녀는 상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그녀는 소위 잘 나가는 학군에 부자들이 산다는 대형평수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전세였다. 나 전세요 얼굴에 써붙이는 것도 아니건만 왠지 모르게 껄끄러웠다. 처음 이사와 유치원 셔틀을 태우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자 학부모들과의 첫 대면이기에 그녀는 지고 싶지 않아 화장을 하고 백화점에 갈 때 입는 로고플레이용 블라우스를 입고 샤넬백을 메고 등원길에 나섰다. 누가 봐도 등원룩으로 과했는데 정작 본인만 그걸 몰랐다. 세명의 아줌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까랑까랑한 두 톤 높인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그들이 그녀를 위아래로 스캔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그들의 기를 죽이고 싶은 동시에 친해지고 싶었다. 이건 뭐 모든 걸 가진 청빈한 삶처럼 역설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기를 죽이고 친해지고 싶다니 그런데 그녀는 진정 진심이었다.

진심이 통한 걸까. 한 학부모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며 연락처를 물었다. 소싯적 번따를 몇 번 당해본 그녀도 학부모가 먼저 연락처를 물은 건 처음이라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번호를 교환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껏 치장을 하고 나가 호감으로 보였구나 크게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번호를 교환한 학부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는 두 다리에 힘이 탁 풀려 버렸다.

 

  사람 기를 이런 식으로 죽인다고?!

이전 01화 두 얼굴의 그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