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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속이 엄마가 됐다고?!

말로만 듣던 헬육아 편

by 이지속

열 시간의 진통 끝에 분만실로 향한 지속, 병히는 종종 거리며 아내와 아기 걱정으로 바짝 긴장했다. 단 5분 후 들린 갓난아기 울음소리에 병히는 지속 말고 분만실에 다른 산모가 있었구나 하며 별 감흥이 없었는데 간호사가 이지속 보호자를 급히 찾는 것이 아닌가! 병히가 얼이 빠져있자 간호사는 어서 아기 사진을 찍으라고 채근했다. 병히는 그렇게 지새끼 울음소리도 못 알아듣고 넋이 나간채 딸과 만났다.

지속은 수월하게 자연분만에 성공하며 자신이 황금 골반을 가졌음을 깨달았다. 갓 배속에서 나온 딸아이는 양수에 퉁퉁 불어 쭈굴쭈굴 했고 털이 몽땅 빠진 원숭이 같았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뽀송한 아기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모성애 가득한 엄마의 모습과 지속은 달랐다. 지속은 참 못생긴 게 세상에 나왔구나. 돈 많이 벌게. 의느님이 너에게 새 인생을 주실 거야. 속으로 생각하며 꼼지락거리는 생명체를 생경하게 바라봤다. 지속은 신생아실에 있는 짱짱이의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걸 지켜보며 젊은 간호사들이 자신을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참 낯설었다.

엄마, 평생을 부르기만 했지 불려본 적 없던 말이었다. 내가 엄마라니, 나까짓 게 아직 철부지에 뭣도 모르는 내가 그런 성스러운 호칭으로 불려도 되는 걸까. 지속은 자신이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출산의 고통보다 더 하다는 젖몸살을 지속 또한 피해 갈 수 없었다. 차라리 애를 하나 더 낳고 말지. 쬐금 해 존재감도 없던 게 그동안의 업신여김을 분풀이하듯 사람을 되게 아프게 했다. 고생 끝에 겨우 성공한 모유 수유, 아! 이 기분은 경험자가 아니면 모를 테지. 온 우주를 품은 생명의 여신이 되어 아기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기분이란, 한마디로 황홀경이었다. 지속이 살면서 지금껏 경험한 모든 행위 중에 가장 가치 있고 경이로웠다.

지속은 짱짱이를 낳으며 자신의 볼품없는 가슴과 자궁이 이토록 쓰임새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이 순간을 위해 지속의 34년 삶이 쉼 없이 흘러왔다고 생각하니 감동스러웠다.

감동은 짧게 지나갔고 이제 지속에게 육아라는 새로운 세상이 싸게 문을 열어보쇼 , 나가 왔당께 하며 노크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찰나의 조리원 천국은 끝났고 본격 스펙터클 서스펜스 호러 로맨스가 시작된 것이다.

짱짱이는 밤낮으로 울어재꼈다. 쪼그만 게 까랑까랑 잘도 울었다. 숲 속에 사는 요정 재질로 생긴 짱짱이는 목청이 좋았다. 지속은 시큰대는 손목에 아대를 한채 우는 짱짱이를 안아 달랬다. 똥도 어찌나 푸지게 싸는지 누가 애기똥은 냄새가 안 난다고 했던가. 애기도 사람인데 똑같았다. 혼자 적막하게 보내던 낮시간에 울어대는 아기와 있으니 분주했다. 젖병은 설거지해놓기가 무섭게 쌓이고 화장실도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봐야 했다. 제대로 씻을 수도 없고 지속은 한 마리 짐승이 따로 없었다. 식탁에서 병히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식사하는 호사는 더 이상 없었다. 병히가 애를 볼 때 지속은 전투적으로 음식을 입안으로 때려 넣었다. 다 먹은 지속이 바통 터치하면 병히도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추노의 밥상이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지속은 행복했다. 둘에서 셋이 된 기적 속에 보내는 나날 아니던가. 출산 후에도 여전히 만삭의 퉁퉁한 아줌마 체형이 되어 그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는 모습이지만 지속은 비로소 진짜 여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행복에 취해 퍼져버린 애엄마 지속은 그때까지만 해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병히가 더 이상 자신을 매력적인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씁쓸한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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