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가 근사해지려면
사계절을 인생 주기로 본다면, 가을은 중년기, 겨울은 장년기에 속한다. 즉 다가올 겨울은 노년기에 해당한다. 대다수는 이 계절을 맞이한다. 어영부영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도착해 있겠지만, 조금 일찍 준비한다면 그 겨울은 훨씬 따뜻하고 풍성해질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앞으로 중장년 세대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 말한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만큼 당연한 결과다. 평균적으로 60~65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하면, 이후 25~30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는다. 인생의 마지막 3분의 1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결코 가벼운 질문이 아니다.
노년기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재정적 안정과 신체적 건강이다. 두 요소는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매우 잘 알고 있는 요소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심리적 건강, 그중에서도 ‘우울’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여러 나라에 비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르다. 지금도 부지런히 제도적으로 보완해가고 있지만, 노인 우울증 만큼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매우 넢은 수준으로,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노년의 우울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 중요한 사실은 노인 우울증 환자의 30% 이상이 경도 치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나 감정 변화를 보인다면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 하고 넘길 것이 아니라 조기에 진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노년기를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서적 안정감이 중요하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활력을 얻고, 관계가 끊기면 고립되어 곧 우울로 이어진다.
따라서 사람과의 연결, 대화, 작은 만남을 일상 속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와의 관계도, 소모임 활동도, 동네를 한 바퀴 걸으며 인사를 나누는 일도 모두 정서적 활력을 되찾게 해 준다. 지금부터라도 친구들과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만 하던 사람들은 노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금부터 잘 놀면서 관계를 돈독히 해두면 노년이 결코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노년의 고립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역 사회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는 나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이미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부모님을 지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단순한 안부 확인보다 하루의 경험과 감정을 들어주는 대화가 정서적 안정에 더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아프다는 하소연을 습관처럼 하더라도 “병원 가보세요”라는 말보다, “함께 병원 가자”라는 다정한 한마디가 부모님의 마음을 든든히 지탱해 준다. 작은 관심이 부모님의 겨울을, 그리고 나의 오늘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아침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며 전날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어보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며 피하던 어머니도 이제는 내가 묻지 않아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신다. 병원 방문, 은행 업무, 장보기 같은 소소한 일들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보며 응원한다. 작은 일상을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이 자긍심을 만들고, 다시 관계와 활력을 회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노년기를 근사하게 보내는 분들이 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인데, 8명 정도의 대학 친구 모임이다. 그분들은 50이 되어서부터 월 회비를 모아서 자신들만의 사무실을 임대하였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강의가 있으면, 강사를 초빙하여 강연을 듣기도 한다. 물론 자신들이 주제를 정하고 순차적으로 직접 강연을 하기도 한다. 그 외 다양한 활동을 하겠지만, 친구들이 의기투합하여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돈독해진 친밀감이 서로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 같아 부러웠다.
정리하자면, 결국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겨울은 돈, 건강, 그리고 건강한 관계에서 얻어지는 건강한 마음이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은 깊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마음의 온기로 가족과 이웃을 포근하게 감싸줄 수도 있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면, 정서적 지지와 온기가 더해지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겨울을 잘 나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