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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Aug 11. 2021

홈메이드 깻잎 페스토

아마존에서 깻잎 씨앗을 주문했다. 리뷰를 살펴보니 씨앗이 너무 오래돼서 싹이 나지 않거나 혹은 깻잎이 아닌 다른 씨앗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어서 고민하다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주문 버튼을 눌렀다. 미국 마트에서 고작 일곱, 여덟 장 들어있는 깻잎 한 묶음에 무려 $3.99, 한국돈으로 육천 원 넘게 쓰느니 차라리 내가 심어서 수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며칠 뒤 주문한 깻잎 씨앗이 도착했다. 배송된 박스에는 'Perilla seeds'라고 적혀있다. 편한 바지를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작은 삽을 들고 뒷마당에 쭈그려 앉아 땅을 고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깻잎 하나 심는 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지. 손가락만 한 구멍에 깻잎 씨앗들을 한 꼬집씩 조심스럽게 흩뿌린다.


며칠 뒤 작은 새싹이 하나 둘 뿅뿅하고 올라오는 것이 너무 귀엽다. 깻잎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쑥쑥 자란다. 그 작은 새싹들이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 나무(?)가 되었다. 깻잎을 바구니 가득 아무리 많이 따도 다음날, 다다음날이면 새잎이 돋아나와 빈자리를 차지한다. 남는 깻잎을 이웃들에게도 나눠주고 삼겹살 파티를 열어 쌈을 싸 먹어도 뒷마당에 구석에 가득한 깻잎 더미를 보며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초록 초록한 바질 페스토 파스타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페스토가 뭔지도 몰랐던 이십  초반, 영국에서 인턴 생활을 마치고 떠난 유럽 여행에서 처음으로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먹어봤다. 스페인에서 묵었던 호스텔의 인심 좋은 주인장이 배고픈 배낭 여행객들을 위해 만들어 접시 가득 퍼줬던 파스타. 같이 여행을 다녔던 호주 친구 Zoe 파스타를 싹싹 비우며 아빠가 자주 해주시는 음식이라 아빠 생각이 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가득했던 낯선  맛의 페스토향이 어쩐지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졌다.


혼자 자취를 하던 시절 원룸 냉장고에 술과 생수병만 가득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김치와 장아찌, 그리고 페스토를 (그것도 직접 심은 깻잎으로!) 만들어 먹는 날 보면 엄마가 아시면 얼마나 놀라실까. 아무튼 오늘은 엄청난 양의 깻잎을 처치하기 위해 깻잎 페스토를 만들기로 한다. 필요한 재료는 올리브 오일, 견과류, 마늘, 치즈, 소금 한 꼬집 그리고 깻잎. 페스토를 담을 유리병을 깨끗하게 소독해서 건조해두면 편하다. 깻잎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다른 재료들과 함께 블렌더에 와르르 쏟아 넣고 재료가 살짝 잠길 정도로 올리브 오일을 부어준다. 페스토가 너무 묽어지지 않도록 일단 처음에는 조금 모자랄 정도로 오일을 넣어보고 나중에 조금씩 더 추가해주면 좋다.


재료만 있으면 쉽고 간단하게 뚝딱 만들  있는 페스토는 의외로 브런치 메뉴에도  어울린다. 바삭하게 구운 베이글 위에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고  위에 페스토를 살짝 얹어먹으면 꿀맛이다. 바질 페스토에 치즈를 잔뜩 넣어 만든 오일 파스타나 피자, 토스트를 좋아하는데 깻잎으로 만든 페스토는 어떨지 궁금하다. 크래커에 발라 안주로 먹으면 와인  병은 순식간에 비울  있을  같다.


초록으로 가득한 작은 뒷마당 한 구석에서 깻잎을 토독토독 따는 재미에 바구니가 금세 찬다. 깻잎 바구니를 품에 안고 의기양양하게 부엌으로 돌아와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물에 헹구며 늦여름 특유의 쨍한 햇빛과 나른함을 맘껏 즐긴다. 힐끔 옆을 보니 고양이들이 부엌 안쪽까지 길게 늘어진 햇살을 담요 삼아 아직도 낮잠을 즐기고 있다. 한 숨 자고 내려와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깻잎 페스토를 바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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