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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Aug 20. 2021

디트로이트 피자가 네모난 이유

어릴 때 엄마가 아주 가끔씩 '오늘 저녁은 시켜먹자! 먹고 싶은 걸로 골라봐!' 라고 하실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와 동생은 신나서 우당탕탕 거실로 달려간다. 지금은 휴대폰 앱을 켜서 터치 몇번이면 손쉽게 음식 주문이 가능하지만 그 때에는 배달 책자를 한 장씩 넘기며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직접 전화로 음식 주문을 해야 했다. 엄마가 서랍에 모아둔 전단지와 동네 식당 배달 책자에는 먹어본 음식보다 아직 안먹어본 것들이 더 많았던 그 시절 어린 나에게는 늘 새롭고 설렜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동생과 나는 배를 깔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배달책을 펼친 뒤 열띤 토론을 시작한다. 피자를 시킬지 아니면 치킨을 시킬지 정하는 중요한 시간.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날은 피자나라 치킨공주에서 셋트메뉴를 주문한다. '피치 셋트'는  피자를 먹다가 느끼해지면 양념 치킨 소스를 듬뿍 묻힌 치킨을 한 입 베어먹고, 콜라로 입가심을 한 뒤 다시 피자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피자를 먹을 때 윙도 꼭 같이 시켜줘야 섭섭하지 않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유명하고 오래된 피자/버거집 하나씩은 있는 이 커다란 미국 땅에서 먹어본 피자들 중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피자는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다. 일단 크러스트(빵 부분)를 다 남기고 먹는 나는 이 네모 모양 피자를 보자마자 진짜 이 천재적인 발상에 감탄했다. 일반적인 원형 피자 조각과 비교했을 때 같은 크기의 크러스트 대비 더 많은 양의 치즈와 속살(?)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당 사장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븐에도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고 포장이나 배달도 왠지 더 용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쓰다보니 나도 궁금해진다. 디트로이트 피자는 왜 네모 모양일까? 위키피디아가 친절하게 그 답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를 개발한 원조 맛집인 버디스 랑데뷰 (Buddy's Rendezvous, 줄여서 Buddy's Pizza라고도 부른다.)는 당시에는 이런 크기와 모양의 베이킹 팬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 제조 공장에 납품하는 철제 사각 팬에 피자를 구웠다고  한다. 

The pizza was developed in 1946 at Buddy's Rendezvous, a former blind pig owned by Gus and Anna Guerra located at the corner of Six Mile Road and Conant Street in Detroit. ... The recipe created a "focaccia-like crust" with pepperoni pressed into the dough to "maximize the flavor penetration". The restaurant baked it in blue steel pans available from local automotive suppliers, made in the 1930s and 1940s by Dover Parkersburg[6] and used as drip trays or to hold small parts or scrap metal[6] in automobile factories because baking pans available at the time were not appropriate for the dish. Some 50- to 75-year-old pans are still in use.

출처: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Detroit-style_pizza


디트로이트 시는 포드 (Ford) 창립자인 헨리 포드가 이 곳에 포드 자동차 제조 공장을 세우고 이후에 GM과 크라이슬러까지 합세하면서 한 때 미국 자동차 제조업의 메카로 전성기를 누리던, 미시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역시 자동차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피자도 자동차 제조 납품용 틀에 구워낸다는 점이 참 재미있다.

Pizza in a traditional-style pan

이 철제 사각 틀은 원래 1930-40년대에 Dover Parkersburg사에서 작은 부품이나  금속 찌끄러기 등을 담는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공업용으로 만들어진 까닭인지 50년에서 길게는 75년 전에 만들어진 틀을 아직도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디트로이트 피자 레시피의 원조로 알려진 Gus Guerra의 아들 Jack Guerra Sr.,는 한 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 공업용 틀을 사용한 이유가 바닥이 깊고 열전도가 빠르고 고른 가열이 가능해 주물팬처럼 고유의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36년 오픈 이래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버디스 랑데뷰는 디트로이트의 6마일가와 코난트가(Conant St.)에 위치해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식당 외관도 낡고 주변 동네도 어쩐지 위험해보여서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식당 안은 꽤 아늑하고 편안한 펍/패밀리 레스토랑의 분위기라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 병을 일단 주문하고 찬찬히 메뉴를 살핀다. 원하는 토핑을 고를 수 있고 나처럼 페페로니에 진심이라면  Detroiter 혹은 Detroit Public TV 와 같은 스페셜 피자를 고르면 무난하다.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와 일반 피자의 차이점 비교

출처: https://www.pmq.com/detroit-style-is-motowns-favorite-pizza/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는 알루미늄 팬이 아닌 공업용 철제 팬에 굽는 다는 점 이외에도 보통 우리가 접하는 피자와는 다른 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일단 사용하는 치즈가 다르다. 얇게 채썬 (Shredded) 모짜렐라 치즈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피자와 달리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는 위스콘신 브릭 치즈를 사용한다. 또한 페페로니 토핑을 치즈 위가 아닌 치즈와 빵 사이에 깔아둔다는 점도 특이하다.


크러스트 이야기를 또 빼놓을 수가 없는데 내가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독특한 크러스트, 피자 가장자리 때문이다. 디트로이트 피자는 쫄깃한 빵 식감의 일반적인 피자 스타일을 벗어나, 튀김처럼 가볍고 바삭바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또 치즈를 가장자리까지 완벽하게 꽉꽉 채워서 빵 부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도 깨끗하게 접시를 비울 수 있다.


미국에 와서 디트로이트 피자를 비롯해 시카고 피자, 뉴욕 스타일 피자, 돼지고기 바베큐 (Pulled Pork)가 올라간 피자 등 세상은 넓고 맛있는 피자는 많다(!)라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지만, 사실은 어릴적 '피자 아니면 치킨' 두가지 중에 하나를 골라야했던 단순했던 시절이 사뭇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거 아니면 저거, 그리고 때때로 선물처럼 '둘 다' 먹을 수 있어서 두 배로 신났었던, 지폐를 두 손에 꼭 쥐고 현관 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던 어린 나와 내 동생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 저녁은 피자나 시켜 먹어야겠다. 페페로니 피자에 양파랑 버섯을 듬뿍 추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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