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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Aug 27. 2021

그리운 부리또

When your food hugs itself...

LA 잉글우드 애비뉴에 위치한 멕시칸 식당 자카떼카스 (Zacatecas). 가게에 들어서기 전부터 흥겨운 살사 음악이 흘러나오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타코, 칩, 맥주, 그리고 부리또가 정말 맛있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Hola! 낯이 익은 웨이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에 앉기 무섭게 토티야 칩과 살사를 가져다주는데, 이 토띠야 칩이 또 요물이다. 가게에서 직접 만든 마성의 홈메이드 칩과 살사가 너무 맛있어서 처음에는 홀린 듯이 한 바구니를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배가 불러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칩은 맛만 보고, 메인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다 먹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남편(그 시절 남자 친구)은 주로 까르네 아사다나 치즈 엔칠라다 중 하나를 주문하고 나는 무조건 탐스 부리또 (Tom's Burrito)를 주문한다. 나는 한 번 빠지면 질릴 때까지 똑같은 메뉴를 계속 먹는 스타일이다. 캘리포니아를 떠날 때까지 자카떼카스에 갈 때마다 기어코 같은 메뉴만 고집해서 먹었는데, 이 부리또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을 더듬으며 입맛을 다시는 인생 부리또로 남아 있다.


탐스 부리또는 이 집 부리또 메뉴 중에서 제일 크고 맛있다. 사실 다른 부리또는 안 먹어봤지만

 사진 출처: 자카떼카스 (Zacatecas) 웹사이트

Tom’s Burrito -- $11.45
(Carne Asada with beans, guacamole, sour cream, onions, and topped with our medium spicy green sauce, cheese inside and on top)


자까테까스의 탐스 부리또는 치즈가 잔뜩 올라가서 포크로 떠먹어야 하는 Wet Burrito, 즉 치즈와 엔칠라다 소스가 곁들여진 촉촉한 (젖은) 타입의 부리또다. 크기는 또 얼마나 큰지, 대식가인 나도 늘 반 이상을 남기고 만다. 남은 절반의 부리또는 To-go 박스에 고이 담아 다음날 회사에 점심으로 챙겨가면 딱이다. 그러면 출근길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리또를 점심으로 먹을 생각에 또 신이 난다.

부리또는 또띠야 안에 각종 속재료를 돌돌 말아 주머니처럼 잘 접어(?) 놓은 모양새 때문에 '음식 재료들이 서로 껴안으면 부리또'라는 인터넷 명언도 있다. 나는 이렇게 포옹력있는 음식들이 좋다. 샌드위치나 햄버거, 타코, 김밥, 만두나 쌈도 제각기 다른 형태로 각기 다른 속재료들을 있는 힘껏 껴안아주고 있지 않은가. 입안 가득 한 입 베어 물면 서로 다른 맛이 한꺼번에 툭 하고 터져나오는 재미는 덤이다.


Hug hug hug




요즘엔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외국인 남편에게 쏟아지던 호기심 가득한 시선들을 기억한다. 말로 내뱉지 않아도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은 표정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야속하게도 낄 곳이 마땅치 않은 것 같다. 김밥을 다 싸고 덩그러니 홀로 남은 단무지처럼. 우리 그룹, 우리 무리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에게 긋는 선은 내가 그 외로운 소수의 편에 설 때야 비로소 보인다.


모르는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며 살다가 미국에 오니 처음에는 자유롭고 홀가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캘리포니아의 단무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여러 무리의 그룹 속에서 나는 겉으로는 두루두루 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어느 무리에서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편하고 익숙해서 가끔은 지겹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그리워졌다.

우리 집, 우리 가족이 그리웠고 우리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우리 동네에 있는 포장마차 김떡순이랑 김밥 천국에서 파는 스페셜 모둠 세트가 그리웠고 영어보다 편한 우리말로 동생과 밤새 지겹도록 떨던 수다가 고팠다. 미국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밤새 정주행 하며 불닭볶음면에 할라피뇨 고추를 가득 넣고 아무리 맵게 끓여 먹어도 나의 그리움과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우습게도 빈곤했던 나의 마음을 채워준 건 다름 아닌 부리또였다. 자카떼카스 (Zacatecas)에 부리또를 먹으러 가는 금요일 저녁 시간을 참 좋아했다. 한 주 동안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딱딱해진 어깨에 힘을 빼고 맥주를 마시며 듣는 살사 음악이 좋았다. 미국에 온 지도 벌써 6년,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아직도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연습을 계속하는 중이다. 언젠가는 부리또처럼 넓은 마음으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이들을 품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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