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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Aug 05. 2021

야채참치죽 먹고 싶은 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몸이 조금만 아파도 덜컥 겁부터 난다. 지난주에는 갑자기 목과 편도선 근처가 붓기 시작하더니 생전 없던 근육통까지 겹쳐 며칠 동안 침대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코로나 테스트를 예약하고 창밖을 바라보니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이 너무 예뻐서 화가 난다. 이번 주는 모처럼 휴가도 냈는데 이게 뭐람! 열 받으니까 머리가 더 아픈 것 같다.


몸이 아프니까 만사가 귀찮다. 입안이 건조해져서 까끌까끌하고 온 몸이 물에 젖은 이불솜처럼 축축 늘어지는 그런 날 꼭 생각나는 음식은 바로 죽. 입천장 다 까질 정도로 뜨거운 죽 한 사발이 먹고 싶다. 고소한 깨와 참기름을 취향껏 듬뿍 뿌려 한 입 크게 떠 넣는 상상을 한다. 뜨거운 밥알이 식도를 넘어가기 전에 종이같이 마른 김을 구겨 간장 종지에 콕 찍어 반찬 삼아 먹으면 죽 한 그릇쯤은 순식간에 뚝딱 비울 수 있을 텐데.


죽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야채 참치죽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죽은 생각보다 손이 제법 많이 가는 음식이다. 물에 불린 찹쌀과 다진 양파를 살살 참기름에 볶다가 육수를 넉넉하게 넣고 계속 저어줘야 바닥에 눌어붙지 않는다. 쌀이 어느 정도 익으면 참치와 나머지 야채를 와르르 쏟아붓고 약한 불에서 조금 더 끓여주면 완성이다. 사실 아프고 귀찮을 때는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죽만 한 게 없다.


사진출처: 본죽 웹사이트

본죽 야채참치죽


나는 어릴 때 소화가 잘 안되어서 걸핏하면 체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간장을 손톱만큼만 뿌린 희멀건 쌀죽을 해주시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플 때 치킨 누들 수프와 소다크래커를 먹고 자란 남편도 나 때문에 죽 맛에 눈을 뜨더니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죽이 먹고 싶다고 괜히 꾀병을 부린다. 한 솥 가득 죽을 끓여서 일주일 내내 그것만 먹어도 맛있다고 잘 먹어준다.


'아프면 나만 고생이니 내 몸은 내가 잘 챙겨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꺼낸 찬밥과 남은 야채들을 탈탈 털어 죽을 만들기 시작한다. 대충 잘라서 잘 섞어 끓이면 그게 그거야 라고 애써 합리화하면서. 모양새는 그저 그렇지만 맛은 나름 괜찮다. 뜨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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