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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Apr 28. 2020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나도 이제 독립한 멋진 어른이 될 줄.


 21살에 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기숙사에 잠깐 한 학기 정도를 살았다. 한 학기를 살고 기숙사는 안 되겠다, 자취방을 구해야겠다 하고 무작정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방 하나를 공유하려니 스트레스가 엄청났고, 옛날 수련회처럼 매주 월요일이면 방 밖에 나와서 해야 하는 단체 점호가 싫었으며 무엇보다 밤 8시면 학교 근처 시설이라고는 편의점 빼고 다 문을 닫고 버스도 끊기는 곳에서의 삶은 너무 답답했다. 매일 아침 버스에 끼여 학교를 오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는 나가야 좀 숨통이 트이겠다 싶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혼자 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무엇보다 월세가 너무 비싸지 않을 것, 둘째로 혼자 밤에 다니기에 무섭지 않을 위치일 것. 그렇게 친구와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를 걸어 다니며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빈 집인지도 모를 건물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그렇게 다니다가 가격은 잘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위치도 좋고 괜찮은데? 싶은 건물이 있어 이 건물은 어떻게 봐야 하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전화번호가 보였다. '00 부동산. 집 보여드립니다.' 혹시나 얼핏 듣던 이상한 부동산 납치 같은 게 아닐까 싶어서 다음 날엔 동기들 두 명을 끼고 다시 그 건물에 와서 해당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고 00 빌라 보고 연락드렸다고 하니 거기서 기다리라고 하길래 동기들과 부동산 아주머니를 기다렸다. 걸어서 오실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는 차를 타고 5분 만에 오셨다. 차에서 내려서 그 건물을 보여주시는 줄 알았는데 다른 집부터 보자며 차를 타라고 하셨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아주머니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 차 안을 한 번 살펴보고 타도 될 것 같다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그 날 해가 질 때까지 오만 빌라를 다 보고 다녔다.


 그중 한 군데가 마음에 들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서울에 계셔서 집을 같이 보러 오지 못한 부모님께 전송했다. 엄마가 계약하기 전에 체크해야 할 리스트라며 빽빽하게 보내준 것들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보증금 200에 월세 32짜리 작은 미니 투룸이었다. 1층에 낮부터 새벽까지 하는 프랜차이즈 치킨집과 방앗간이 있어서 1층이 늘 환했고, 길 모퉁이에 24시 편의점이 있었다. 월세도 그만하면 꽤 괜찮지 싶었다.


 사실 월세가 처음부터 200에 32였던 것은 아니었다. 부동산 아주머니가 100에 35라고 말하셨었는데, 어디서 보증금을 조금 올리면 월세를 깎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주머니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단호한 표정을 짓고 200에 32는 안 되겠습니까 하고 여쭤봤다. 이미 집이 마음에 들었는데, 아주머니가 기분이 상해서 그냥 가라고 하면 어쩌지 하고 쫄았지만, 동기들이 집세 안 깎고 처음에 부르는 대로 주고 계약하면 바보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동기들 중에 자취방을 구하는 건 내가 처음이었다. 동기들도 사실 잘 몰랐는데, 집을 구한다니 어디서 주워들은 듯한 얘기를 이것저것 해주었었다.) 아주머니가 집주인과 연락해 본다고 나가시더니 들어와 집주인이 오케이 했다고 그렇게 계약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다음 날에 집을 계약하러 부동산에 갈 때는, 동기들 세명과 함께였다. 부동산 사기를 당할지 모르니 다 같이 가야 한다는 거였다. 장수가 여러 장인 부동산 계약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넷이서 학교에 입학하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이게 제대로 된 계약이 맞는가 종이를 째려봤다.


 이렇게 집을 구하러 다닌 지 1주일 만에 생각보다 쉽게 첫 자취방을 구했다. 나중에 살아보니 그 집이 주위 다른 곳보다 월세가 싼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아침 8시면 문을 여는 방앗간에서 돌리는 기계소리에 바로 윗 집이었던 우리 집은 바닥이 흔들렸고, 밤에는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오토바이 소리에 조용할 틈 없었다.


 그래도 21살에 난생처음 구한 첫 집 치고는,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과 멀리 떨어진 경상도의 한 도시에서 타지살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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