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Where the will is silent, the world is nothing; there remains no suffering.”
"의지가 잠잠해진 곳에 고통도 남지 않는다."―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고통을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원하는 것이 많을수록 충족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지고,
의지가 강렬할수록 그만큼 더 괴로움도 깊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과하게 사교육을 계획하는 부모,
성공을 위해 잠을 줄이는 직장인,
끊임없이 무언가를 좇으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사람들.
이들 모두는 의지가 만들어낸 욕망의 수레바퀴 위에서 쉼 없이 굴러가고 있다.
나 또한 그 위에 올라타 스스로를 괴롭힌 적이 많았다.
추운 캐나다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
3~4년에 한 번 뵐 수 있는 부모님께 어떻게 하면 덜 죄송할 수 있을지,
할머니,할아버지의 사랑을 직접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 빈틈을 어떻게 채워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물질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이 모든 생각들 역시 ‘나쁜 의지’는 아니다.
의지가 있기에 삶은 발전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내 역량과 한계를 넘어서는 의지를 품을 때
그 의지가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의지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내 욕망과 행동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의지는 억지로 없앨 수 없다.
하지만 관찰할 수는 있다.
나는 무엇을 강하게 원하고 있는가?
그 욕망은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불안과 비교심리가 만들어낸 것인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노력인지,
부모로서의 두려움 때문에 과하게 움직이는 것인지
스스로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모든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욕망을 줄이고, 고통 또한 덜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무리한 사교육을 더하는 대신
함께 보내는 시간과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
성과를 위해 자신을 혹사시키기보다
건강과 휴식을 먼저 챙기는 것,
당장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의지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욕망을 다스릴 수는 있다.
의지를 이해하고, 관찰하고, 필요 없는 욕망을 내려놓으며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결국 삶의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