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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Nov 23. 2020

나는 여왕개미 같은 조산기 임산부

마흔 넘어 다시 시작된 육아 12

  30주에 자궁경부가 1.5센티까지 짧아져 입원한 지 한 달이 넘어 34주를 넘겼다. 자궁경부는 2센티가 되기도 하고 2.5센티도 되었다가 다시 2센티.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그래도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절대 안정해서 이 정도였지 집에 있었으면 진작 둘째가 태어났을 것이다.


  임신 16주와 21주에도 태반이 내려가고 자궁경부가 짧아지는 조산기로 입원을 했으니 실제로 입원한 총시간은 그때 당시 두 달 반을 넘긴 것이었다.


  입원한 지 한 달이 넘어가니 팔에 링거를 꽂을 데가 없을 정도였다. 주사와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3일에 한 번씩 팔을 바꾸어 가며 링거를 맞는데 나중에는 주사 꽂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은 링거를 오늘만 맞지 않으면 안 되냐고 의사 선생님께 부탁해서 오랜만에 링거 없이 자유의 몸이 되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다음날 바로 자궁경부가 다시 짧아져서 엄청 놀랐다는 사실. 쿨럭. 실제로 링거를 맞고만 있어도 조산기에 안정이 되는 효과가 있단다.


  입원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나름 노하우도 생겼다. 3일마다 링거를 다른 팔로 바꿔 꽂을 때마다 간호사님에게 30여분쯤 시간을 달라 하고 샤워를 후다닥 하곤 했다. 그리고 머리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감았는데 남편이 저녁에 오면 머리를 감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 산부인과에 미용실처럼 누워서 머리를 감는 샴푸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겠지만.


  조산기로 입원하면 매일 하는 것이 있는데 혈압을 자주 재고 아침저녁으로 뱃속 아기의 태동을 기계로 체크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겨우 잠을 잘라하면 간호사님들이 와서 혈압을 재고 태동을 재고 그랬다. 그러면 또 잠이 깨서 늘 피곤했다. 깊은 잠을 푹 자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다인실이다 보니 환자들의 손님들, 가족들도 오고 또 잠들만하면 식사가 나오고 암튼 드문드문 조금씩 잠을 다. 임산부는 원래도 피곤한데 잠을 푹 자지 못하니 더욱 피곤했던 것 같다.


  오래 입원을 하다 보니 간호사님들과도 다 친해지고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과도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간호사님들이 다른 날들과 달리 힘들어 보이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침체되었던 날이 있었다.


  제일 친한 간호사님께 살짝 물어보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조산기로 입원해 1인실에 있던 임산부가 있었는데 그 임산부가 그 전날 임신 38주였단다.


  그런데 전날 저녁에 임산부가 배 속에 아기 태동이 잘 안 느껴진다며 태동검사를 해달라고 했는데 아침 태동검사에도 이상이 없던 아기가 갑자기 숨이 멎어 있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어찌나 놀랍고 무섭고 불쌍하고 슬프던지. 거의 다 키운 아기였는데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기가 사산되다니. 원인불명으로 아기가 잘못되었으니 그 임산부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간호사님들이 그 임산부가 있는 방에 들어가기를 다들 꺼려다고. 그 임산부의 얼굴을 다들 볼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 임산부의 이야기가 너무나 슬퍼서 생각날 때마다 나는 기도해 주었다. 그 아기와 임산부를 위해서 말이다. 아기는 좋은 곳으로 갔기를. 임산부는 빨리 회복해서 또 건강한 아기천사가 찾아오길. 그리고 열 달 꽉 채운 아기가 태어나길 기도했다.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나처럼 조산기로 그나마 오래 입원하는 임산부 동생 두 명이 생겨서 셋이서 엄청 친하게 지냈다. 다 모두 둘째가 조산기로 입원한 케이스라 더 친해진 듯하다.


  수다도 자주 떨고 간식도 같이 먹고 밥도 같이 먹으며 나름 전우애를 느꼈었다. 다들 똑같은 게 낮에는 병원에 우리 임산부들만 있다가 저녁만 되면 남편분들이 첫째를 데리고 왔다 가셨고 다양한 간식들을 두고 가곤 했다. 그 모습이 참 재미있어서 어느 날은 조산기 동생들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무슨 여왕개미 같지 않아? 알을 품고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밥 먹을 때만 일어나고 또 누워있다가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눕고.(허리가 아파서) 그러다 저녁이 되면 남편 개미들이 와서 간식을 주고 가. 그러면 또 먹어. 그리고 또 누워. 그걸 계속 반복해."


  조산기 동생들은 다들 빵 터져서 웃고 나도 말하면서 같이 웃고. 웃기면서도 애달픈 말이었다.


  남편들과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나서 8시, 9시쯤 되면 야식이 생각나 셋이서 번갈아 가며 떡볶이도 배달시켜 먹고 어느 날은 치킨, 또 어느 날은 피자를 시켜 같이 나눠먹기도 했다.


  그렇게 두루두루 잘 지내나 싶었는데 첫째 딸아이와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음 편에 계속


조산기 전우들과 야식으로 시켜 먹던 분식


한 달 반 이상 입원했던 내 자리ㅡ창문이 있어 해와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이유로 다인실에서 명당자리였다.


https://brunch.co.kr/@sodotel/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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