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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Dec 20. 2021

살인마의 누명을 벗다

이런저런 이야기 131

  결혼 16년 동안 우리 집에는 식물이 없었다. 결혼초에 선물 받은 화분들이 몇 개 있었는데 한 달도 안돼서 죽어버렸고 가끔씩 남편회사나 지인들에게 받은 화초나 꽃화분들 역시 내손에만 들어오면 다 죽어버렸다.


  몇 년 전에는 남편과 집 근처 꽃시장에 구경을 갔다가 다육식물은 키우기 쉽고 잘 죽지 않는다는 말에 혹해서 다육식물 서너 개를 사 와서 키웠는데 역시나 금방 죽어버렸다.


  그때부터 남편은 나를 다육 살인마라며 놀렸다. 잘 죽지 않고 키우기 쉽다는 다육이들까지 죽이냐면서 말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절대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 사회복지사 실무행정과정에서 원예심리치료 수업을 들었는데 흙, 화초, 꽃, 식물들을 만지고 또 직접 화분을 만들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그런 내용의 수업이었다.


  그때 교수님의 설명대로 만들었던 다양한 화초들의 화분과 다육식물 화분을 한 달 동안 매주 두세 개씩 만들었고 완성된 작은 화분들을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가져왔더니 남편이 또 놀리기 시작했다.

"당신 또 불쌍한 식물들을 죽이려고 가져왔어? 주변 지인들한테 빨리 선물로 줘."


  남편이 자꾸 놀리자 이번에는 절대로 죽이지 말고 잘 키워봐야지라는 오기가 생겼다. 베란다 한 곳에 화분들을 옹기종기 모아 둔 후 자주 봐주고 물도 적당히 잘 주었다. 베란다에 빨래를 널러 갈 때마다 만져주기도 하고 말이다.


  그랬더니 진짜 모든 화분들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있다. 너무너무 신기하고 나 자신한테도 놀랍고 대견하다. 화초들과 다육이들이 죽지 않고 잘 자랐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 집이 워낙 환기가 잘되고 해가 잘 드는 남향집이라서 그런 듯하다.


  특히나 다육식물들이 정말 잘 자라는데 화분 바닥에 붙어있던 작은 다육이들이 지금은 나무처럼 기다랗게 커져서 다육 나무들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육 살인마의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작년에 만들었던 화초들과 다육식물 화분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의 화분들ㅡ다육나무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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