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리스트 하나 없는 프라이빗 섬으로
시와 숙소에서의 조식
10월 중순에도 낮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더위를 가진 시와는
밤에는 내가 이집트에 왔단 사실도 잊을 만큼 오싹한 추위를 가진 곳으로 변모한다.
몇 번씩 잠에서 깨다가 아침이 되며 다시금 데워지는 바깥공기에 느지막이 눈을 떴다.
방 안이 너무 어두워 문을 열고 준비를 하다가 또다시 파리천국이 된 보금자리에서 기괴한 춤을 추며 채비를 마치고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마침 방 앞을 지나던 이 숙소의 사장님인지, 관리인인지 모를 아저씨가 레이지 걸이라며 우리를 반겨줬다.
늦게 일어나서도 있지만 그날 새벽 2~3시쯤 사람들이 전부 나와서 쏟아지는 별을 구경했다고 한다.
우리도 전날 저녁을 먹고 온천을 즐기면서 짧은 별구경을 하긴 했는데,
새벽엔 하늘이 더 까맣게 돼서 더욱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었나 보다.
아쉬운 마음이 없었냐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이트버스를 타고 온 후 바로 사막의 더운 날씨에서 하루 종일 투어를 다니며 상당히 지쳤던 전날 컨디션을 생각하면 설령 알았더라도 도전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 쉽게 단념할 수 있었다.
식당은 반야외였는데 어김없이 파리와 묘기를 부리며 조식을 먹었다.
이집트에 와서 더위도, 수압도, 모래도, 먼지도 점점 겸허히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던 나였지만,
파리는 그 윙윙거리는 소리와 접촉으로 인한 불쾌감 때문에 도저히 TV에서 보던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눈가에 앉든, 몸에 달라 붙든 내버려두는 지경까지는 도달할 수가 없었다.
파리 쫓기에 지쳐서 평소보다 적은 숟가락질을 마친 후 시와 시내로 가기 위해 인드라이브 앱을 켰다.
사막에 있는 숙소라 과연 택시가 불러질까 우려하긴 했는데 역시나 어떤 기사도 응답이 없었다.
마침 우리에게 레이지 걸이라고 했던 아저씨도 자리를 비워서 그곳에 계시던 아주머니 한 분과 아이에게 시내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으나, 안타깝게도 영어를 못하셨고, 번역기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듯하였다.
결국, 어제 우리의 툭툭이 기사 말리에게 왓츠앱으로 연락을 했고, 바로 데리러 온다고 하였다.
2~30분 정도 기다린 후에 말리가 어제 그 툭툭이를 몰고 왔다.
두개골까지 울림을 줬던 그 툭툭이가 그때는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음료는 한참 걸리지만 작고 귀여운 카페
말리의 툭툭이를 타고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친구가 알아본 카페에 갔다.
수박주스와 모히또를 시켰는데, 수박주는 땡모반을 기대했으나 미지근하고 밍밍했으며,
모히또는 달달 상큼하고 시원하진 않았지만 맛있었다.
주문을 하고 나서 20분이 지나도 주스가 나오지 않았는데,
우리 이후에 주문한 사람들도 주스를 받아서 가는 걸 보니 잊은 게 분명하다 생각하여 직원에게 물어봤다.
태연한 표정으로 저스트 2분이면 나올 거라고 했다.
까먹어 놓고 늘상 있는 일이라 당황한 기색도 없이 대답을 한 건지
진짜 지금부터 준비하려고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뭐가 됐든 아무리 늦어도 10분이면 나올 주스를 안 하고 있었던 건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별로 화가 나거나 기다림에 지치지도 않았다.
이집트는 기다림의 연속이니까.. 알려줬을 때라도 준비를 시작하면 다행이다.
그로부터 한 15~20분 뒤쯤 주스가 나왔다.
이집션 타임은 이번 여행을 통해 통계를 내보니 대략 적게는 5배에서 10배 이상까지도 가는 듯하다.
그들의 느긋함을 배우고 즐기는 편이 여행의 질을 올려줄 것임을 빨리 터득할수록 좋은 곳이 바로 여기 이집트다.
친구와 앉아서 수다도 떨고, 각자 연인과 전화타임도 갖다가 앉아있는 것이 지겨워 시와 시내를 둘러볼 겸 말리와의 약속시간 1시간 전에 일어나는 실수를 범했다.
양산을 쓰더라도 한낮의 사막에서 최대 20분 이상 걷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카페를 한 번 더 갈까 하다가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섬에 가기 전 밥은 먹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길거리에서 파는 피자와 파르페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음식을 사 먹었다.
길거리 음식치고는 20분 정도? 꽤나 오래 걸렸고, 이번에는 다행히 한참 뒤에 제작을 시작한 건 아니고 꽤나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었다. 치즈를 녹여서 양면을 돌아가며 붙이고 천장까지 익힌 후에야 완성되었다.
그나마 그늘이 조금 있었지만 그 날씨에 야외에서 먹느라 잘 들어가진 않았으나 독특하고 맛있었다.
그렇게 길거리 음식점 옆에 대충 앉아서 피자 파르페를 먹으며 말리를 기다리다가 아까 알려준 카페 위치와 달라져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말리에게 연락을 했더니 본인 것도 하나 시켜달라고 했다.
20분이나 걸리는데..
말리거 하나 시키고 또 기다렸다. 먹다 보니 목이 막혀서 콜라를 사려고 보니 음식점에서는 팔지 않아 근처 마트에 가 사서 친구와 나눠 먹었다.
말리가 이곳에 도착해서 먹는 걸 기다리고 출발하면 좀 머쓱해하겠다 싶었는데, 본인은 섬에 가서 먹겠다고 포장을 했다.
계산을 하려고 하길래 친절한 가이드 말리가 고마워서 우리가 사준다고 했더니,
엄청 난감해하고 거절하다가 결국 고맙다고 했다.
이집트에 있는 박시시 문화는 엄청 관광화된 곳이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문화인 걸까?
아니면 말리가 팁이나 그런 제공을 받는 것에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인 걸까.
프라이빗 섬 그리고 리조트, 타그하린
다시 툭툭이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려서 '타그하린' 섬 그리고 리조트에 도착하였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카이로에서 산 스카프를 요긴하게 썼다.
섬 하나를 통째로 리조트로 만들었는데, 리조트를 이용하지 않아도 인당 200파운드(6,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시설 이용이 가능한 곳이었다.
리조트 내부에 수영장과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고, 수압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샤워장도 있었다.
무엇보다 리조트를 둘러싼 호수는 염분기가 높아서 소금호수 정도는 아니지만
수영을 못하는 나도 몸이 붕붕 떠 자유롭게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호수에서 수영을 한 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서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잤다.
우리와 말리, 직원 말고는 1명 정도 더 이용자가 있었는데,
말리 말대로 관광객은 물론이거니와 사람 자체가 거의 없어서 프라이빗 섬에 방문한 느낌이었다.
전날의 유명 관광지 위주로 이루어진 투어도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의 여유로운 휴식이 나중에는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계획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유명하지 않아 관광객이 드문 곳에서 느끼는 짜릿함은
마치 이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으로서 결국 유화되지 못한 채 등 떠밀려 떠나는 것이 아닌
내가 타지인인지 현지인인지와는 무관하게 진정으로 이 낯선 곳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어 좋다.
해가 질 때쯤 주스 2개를 시켜 호수 앞 벤치에서 노을을 보았다.
나는 바나나우유, 친구는 클레오파트라 샘에서 먹은 siwi 주스를 시켰는데,
바나나우유는 가공된 것이 아닌 본래 그대로의 맛이 나서 맛있었고,
siwi주스는 클레오파트라 샘의 것과는 다르게 바나나가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지
커피가루의 존재가 더 잘 느껴져서 주스가 주는 신선함과 상쾌함은 덜 하였다.
이때에는 리조트의 숙박객인지 우리처럼 시설 이용자인지 모를 다른 사람도 3명 더 있었다.
그들끼리는 같은 무리로 보였고, 현지인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와도 몇 마디 했었는데 웃음이 많은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가든 속의 숙소, 저녁식사
시와에서 가보고 싶었던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시내로 돌아가면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서
말리에게 부탁해 숙소에서 저녁을 차려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저녁식사 2개를 요청하고 다시 툭툭이를 탄 뒤 숙소로 돌아갔다.
8시 반까지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50분쯤 식사가 나왔던 것 같다.
숙소 이름이 올리브 가든 어쩌고였는데, 이름에 걸맞게 방 외부부터 방 내부까지 하나의 큰 정원 같았다.
방이나 식당 내부에도 나무가 관통하고 있어서 신기해하며 찍었던 것 같다.
시와에서의 둘째 날은 조금 더 여유롭게 힐링을 하며 그렇게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은 바다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메르사 마트루로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