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 남자의 결정사 후기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려운 나는 결정사에 가입해서 특정 범위의 이성들로 범위를 좁히면 사랑을 시작할 확률이 높아질 거라 판단했다.
물론 횟수를 모두 소진하고 나서야 잘못됨을 알았다.
그 비용은 수업비로 낸 것으로 치자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먼저 객관화를 시켜주었다.
만남이 가능한 연령대가 30대 초중반으로 제한, 이성의 종교 없음 이 두 가지만 보고 만나보자고 했다.
마음 속으로는 “만나기만 하면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거다”라는 착각에 빠져있었기에 동의했다.
결정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낭만의 무대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적인 조건을 중시하는 시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장에서는 나 역시 경쟁력을 갖췄어야 했다.
어줍잖은 낭만만으로는 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얼떨떨했고, 이내 허탈감이 밀려왔다.
솔직히 지인을 통한 소개팅보다 못했다.
나의 모든 것이 숫자로, 항목으로 수치화된 프로필이 눈앞에 놓였다. 연봉, 자산, 직업, 학력, 심지어 부모님의 직업과 재산까지.
나는 그저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촘촘하게 짜인 거미줄 같은 조건표 위에서 평가받는 하나의 상품 같았다.
내가 가진 내면의 가치, 쌓아온 경험, 성품 같은 것들은 숫자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연애 시장의 '상위 1% 쏠림 현상'이었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모든 사람의 선택권은 소수의 '고스펙' 남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매칭 제안을 받았고(심지어 무료도 받는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좀처럼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만약 내가 99점짜리라면 그 위엔 100점짜리가 있고, 그 위에는 또 1,000점 남자가 있더라.
그리고 내가 30점이라면 31점짜리 여자도 만나지 못하는 아주 냉혹한 곳이었다.
담당 매니저는 “그래도 만나보면 다를 것이다”라며 어떻게든 횟수를 차감하려는 모습이 보여 “이것이 자본주의구나”라며 혀를 내둘렀다.
8번 중에 7번은 모두 애프터에 실패했고, 한 번이 조금 특별했다.
애프터를 받아주고 두 번 더 만났지만, 내가 일방적인 호감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제가 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요. 맘에 안 드는 건 아닌데, 끌리진않아요.”
“그래도 전 00씨를 더 만나고 싶습니다. 아직 잘 모르잖아요?”
그러자 그 분의 표정이 포크레인에 쌓인 모래를 붇듯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근데, 우리가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지 못하시나요?"
아. 내가 너무 늦게 알았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특별한 삼프터가 나에겐 큰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마디 더했다.
“저는 아직 6번 더 남았어요. XX씨도 좋은 인연 만나세요.”
나는 그 블랙홀의 바깥에서 맴도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그동안 낭만적으로 그려왔던 '사랑'이라는 그림이 현실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좌절감을 넘어선 혼란스러움과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이것이 내가 알던 진짜 어른들의 사랑과 결혼이었나?
결정사 경험은 내게 쓰디쓴 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되었다.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은 그곳에서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
더 이상 영화 같은 운명이나 드라마틱한 만남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인생은 거래이고 연애 역시 하나의 협상 테이블이라는 냉엄한 진실을 받아들였다.
이제 나는 조건을 따지는 것이 속물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이 연애 시장의 본질임을 인정한다.
나 역시 나 자신을 더 나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달았다.
경제적 능력은 물론, 자기 관리와 매력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이 냉혹한 시장에서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때 만약 누군가에게 결정사 후기를 물어보았다면, “낭만적인 사랑의 판타지를 버려라.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갈고닦아 연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라”라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사랑이 전부 조건만은 아닐 테다.
하지만 적어도 조건을 충족시킨 후에야 비로소 '낭만'을 논할 기회라도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