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면접
회사에서 힘든 순간을 겪을 때마다, 경력이 짧아서, 실력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연차가 쌓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오르고, 실력이 쌓이면 그다음에는 분명히 보상이 있을 것이고, 더 여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생활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어서 회사 경력 12년 차가 되었는데도, 회사에서 눈물을 참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업무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 견디기 어렵고, 이런 내가 너무 초라하고, 마흔씩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힘들까 싶고, 여전히 회사 내의 인간관계는 또 어려워서 몇 번이고 좌절했었다.
나이가 들면 이직도 점점 힘들어지니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내 인생 마지막 회사라고 여기고 인생의 축을 옮기듯이 힘들게 옮긴 회사였다. 그래서 잘하고 싶었는데, 굴러온 돌이라서 그런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업무를 맡아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어디에서도 1인분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고, 실제로 그래야만 마음이 놓였는데, 지금의 회사생활은 1인분 이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나한테 더 잘 맞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직을 시도했었다.
이직을 시도했던 곳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꿈의 직장이었다. 이직에 성공할 경우 안정적인 환경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다닐 수 있을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 회사가 업계 상위권이라 감히 지원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다 보니, 쌓인 분노가 에너지가 됐고, 덕분에 이력서가 훌륭하게 써졌다. 그 결과 경력직 채용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이후 4시간에 걸친 업무 전문성 측정 시험까지 치렀다. 하지만 그렇게 애쓴 시험이 무색하게, 면접 전형에서 바로 탈락했다.
면접의 질문이 정말 까다로웠는데, 다시 태어나도 그 면접은 통과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경력직 면접이었는데, 업무에 관해 묻는 내용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단 하나도 하지 못했고, 그것이 너무 창피했다. 내 경력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밀도 높게 쌓아온 소중한 경력이었고, 어디에서도 1인분 이상을 해온 경력이었는데, 그게 면접 때는 조금도 전달되지 않았다.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 드러났고, 자신 없는 부분에 대해 잘 해명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자신 있는 부분으로 면접의 흐름을 가져왔어야 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해서 장점이 조금도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은 괴로운 면접이었다.
그 면접에서 떨어진 후, 한동안 많이 속상해했다. 이제 이직시장에서 가능성이 없는 사람같이 느껴졌고, 이직을 하지 못하면 현재 회사에서의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 경쟁자들은 면접에서 내가 대답을 못했던 그 질문들에 대답을 잘 해내고 입사를 하겠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경력과 경험치가 일시에 사라진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 내 안에 쌓아왔다고 믿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내가 월급을 받고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직업 하나뿐이었는데, 면접을 통해 내가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서 힘들어했다. 면접에서 탈락한 후 한동안 무기력했다.
이직 시도에 실패한 후 지금 다니는 만족스럽지 못한 회사가 내 인생의 마지막 회사라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에서는 진급도, 좋은 인사평가도, 연봉 인상도, 직업인으로서의 성장도, 업무에 대한 인정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힘들게 애쓸 이유가 없다. 과거에 회사 내에서 진급 경쟁에서 밀려난 만년 과장, 만년 차장님들을 보면서 왜 저분들은 저렇게 힘을 빼고 다니는 것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분들이 앞으로의 나의 롤모델이었다. 이 회사가 내 마지막 직장이 될 것이라면, 최소한의 일만 하며 버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다짐하고 한동안은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더 힘들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써서 애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결국 나는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애쓰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에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보기로 다시 마음먹었다. 나는 역시 일을 하면서 나의 쓰임새를 확인하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지금 회사에서는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로 살아가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진급이나 좋은 인사평가, 연봉인상, 좋은 업무의 기회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고 이것들을 내가 통제하기는 어렵다. 나는 외부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회사에서의 내 하루를 가치 있게 쓰고 싶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납득하고 싶다. 이왕이면 최선을 다 해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의미 있길 바란다. 외부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내 하루에 최선을 다하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이직을 못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직장이 내 인생 마지막 직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여기보다 어딘가에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고, 나는 그 기회를 찾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 나한테 더 잘 맞는 곳에 갈 수 있기를 바라고, 내가 내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곳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이직시도를 멈춘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곳에 영영 갈 수 없게 될 것이라서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이력서를 썼다. 직장생활에 진심을 담아 일하는 것만큼 미련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