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요가
요가를 시작한 지는 8년이 넘었다. 누가 어떤 운동을 하냐고 물으면 요가라고 대답하곤 하는데, 그러면 '요가를 얼마나 하셨어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8년 좀 넘었어요.'라고 답하면, '와, 정말 유연하신가 봐요.' 아니면 '진짜 잘하시겠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요가라는 것이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해나가는 거라고 하지만, 가끔은 오래 해온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요가를 처음 하냐는 말도 종종 듣기 때문에 요가를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내가 오랫동안 요가를 해왔다는 것은 종종 비밀에 부친다. 요가를 오래 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물구나무서기도 못하고, 손바닥만 바닥에 붙인 채 나머지 몸을 들어 올리는 자세인 핸드스탠드도 못한다. 고난도의 자세가 아님에도 못하는 자세들이 많다.
요가를 오래 했다고 하면 유연성이 좋겠다고 하는데, 유연성이 조금도 없다. 게다가 척추뼈가 분절되지도 않아서 안되는 자세들도 많다. 유연성도 별로인데, 힘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과거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안타까워하며 1:1 수업을 제안했고, 나는 오랫동안 1:1 수업을 듣기도 했다. 많은 돈을 써서 알아낸 결론인데, 내 몸은 쉽게 유연해지지 않을 것이고, 지금 하지 못하는 요가자세를 단기간 내에 할 수 있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생에 머리서기나 핸드스탠드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요가를 다니는 8년 내내 반팔티에 긴바지의 요가옷을 입는데, 어깨가 드러나고 등이 드러나는 옷은 고수의 영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날씬하지도 않고 요가를 잘하지도 못하니 요가복은 되도록 노출이 없는, 이왕이면 초보자처럼 보이는 옷을 입는다. 실력과 옷차림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는데, 없는 실력에 화려한 요가복을 입기가 조심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요가를 8년이나 했으면 전문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한다. 나도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제 수업시간에 했던 자세인데 왜 오늘은 안되나 싶은 매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요가는 여전히 소중하다. 30대 내내 요가를 다녔는데, 처음 본 사람이 요가를 처음하냐는 말에는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네, 요가 진짜 재밌네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뻔뻔함이 늘었다.
과거에는 요가를 못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많은 시간을 요가에 투자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할 수 있는 자세를 나만 하지 못할 때 속상하기도 했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한 요가였는데, 수업시간에 요가 자세를 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지 돈과 시간을 들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요가는 아니었다보다. 그래서 요가하는 시간만큼은 애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요가를 하자는 쪽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떤 요가 선생님들은 내 몸으로 어려운 자세를 못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내가 어려워하는 그 자세들을 하기에는 아직 몸이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아직 어떤 요가자세들은 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8년 만에 받아들이고 있다.
요가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요가를 좋아한다. 요가 수업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요가 수업을 듣는 그 순간에는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몸을 이완하고, 호흡을 깊게 내쉬는 행위들이 겉에서 보기에는 대단한 것들이 아닐지라도 잠깐 생각을 멈추고 내 중심을 바로 잡는 이 행위가 굉장히 소중하다.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컸던 날 점심시간에 들었던 요가 수업에 구원을 받은 것처럼 감정을 전환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감정적으로 슬프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요가 수업에 가서 요가자세를 하다 보면 수업이 끝난 후에는 부정적인 감정에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요가를 했기 때문에 몇 번이고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되는 데에는 요가의 힘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어떤 일들은 꾸준히 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기 보상이 되기도 한다.
요가 수업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멘트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멘트가 하나 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눈을 감고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한 가지씩을 떠올려 보라고 했었는데,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가치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수업시간 동안 그 소중한 한 가지를 계속 떠올리면서 동작을 이어가라고 하셨다. 수업의 동작이 점점 빨라지고 숨이 차올랐는데, '이 동작들은 여러분이 지키고 싶은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에요. 그 동작 속에서 끝까지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마음으로 움직여 보세요.'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서 가끔 생각이 난다. 나는 여전히 요가 동작에는 자신이 없지만, 요가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 많다는 것은 안다. 요가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진 못했을 것이다. 요가는 내 안에 어떤 것을 분명하게 만들어냈다.
요가를 오래 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요가는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되어도 요가를 하겠구나.' 생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요가를 앞으로 한 40년쯤 더 할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물구나무서기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지지도 않는다. '하다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몸을 앞으로 숙이는 자세에서 손을 늘어뜨렸을 때 손바닥이 바닥에 닿지도 않았었는데, 지금은 손바닥 전체가 바닥에 닿는다. 지금은 되지 않지만,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머리서기나 핸드스탠드 자세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런 내가 요가 동작에 간절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요가 동작을 간절함으로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요가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기분 좋게 하는 것으로 남겨두고 싶다. 계속 시도하되, 자세가 완성되는 날을 기다릴 것이다.
요가 수업이 끝났을 때의 감각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요가 수업 때 들고 갔던 고민거리가 사라지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용기가 생기면 '다시 해봐야지, 뭐.' 라고 다짐하면서 돌아오곤 했다. 어제도 요가 수업을 들었는데, 어제 들었던 요가 수업이 무색할 만큼 내 몸은 여전히 긴장이 가득하다. 그래도 또 요가 수업에 가서 수업 동안 구깃구깃해진 몸과 마음을 아주 조금만 펴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끝나고 난 후 보상처럼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가벼워진다. 딱 하루치만큼 몸과 마음을 늘리고 오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덕분에 더 줄어들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고 믿는다. 요가 동작이 안 된다고 속상해하기에는 요가가 내게 준 것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