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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샀는데요, 운전은 아직입니다.

어떤 운전

by 서윤재

재테크 유튜브에 따르면 사회초년생은 차를 사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회 초년생은 돈을 아껴서 돈을 모아야 되는데, 차를 사면 유지비용이 많이 드니까 차를 사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최대한 돈을 모으라는 것이다. 차를 사면 기름값이며, 보험료며, 유지비를 내야하므로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했다. 그래서 차를 사는 것은 막연하게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면서 버스와 지하철로 출퇴근이 가능한데 차를 사는 것은 돈이 많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오래된 뚜벅이었고, 뛰어난 뚜벅이이기도 해서 대중교통만으로 전라남도의 보길도와 청산도, 완도, 땅끝마을 등을 여행했었다. 해가 떠 있을 때만 이동이 가능하며, 일정보다도 버스 시간 맞추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였지만, 차가 없이도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차는 결혼을 해야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 그때 운전할 일이 생기니 그때 차를 사게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까 사회적으로 차가 필요 없는 사람인 것이다. 남편이 없으니까 나도 차가 필요 없고, 내가 운전할 일이 없는 것이다. 또한, 차는 남자들이 사는 것이라고, 내가 차를 사거나 운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런데 운전이 왠지 인생의 남겨진 숙제처럼 느껴졌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은 뭔가 인생의 어떤 부분을 놓치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여성 운전자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운전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살다 보니 운전이 아쉬운 순간이 종종 생기고는 했다. 가고 싶은 장소가 생겼는데 대중교통이 아니면 접근이 어렵다던가, 아니면 갑자기 다친 부모님을 택시에 태우고 병원까지 간다거나, 무거운 짐을 옮겨야 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운전을 할 수 있더라면 얼마나 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갈 때에도 백팩에 한가득 짐을 넣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을 메고 다닐 때나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가서 하루에 몇 대 안 다니는 버스시간을 기다렸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운전을 못하는 것이 어쩐지 손해 보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데, 차를 구입해서 끌고 다니는 것이 과연 옳을까에 대한 고민도 가볍지 않았다. 돈에 대해 고민을 할 때마다 결론은 지금은 돈을 아껴서 모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돼서,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미래로 미뤘다. 직장생활에 다니는데도 언제나 돈이 없었고, 부족했다. 이렇게 빠듯한데, 주변을 보면 모두 차가 다 있다. 다들 차를 끌고 다니며 어디론가 다녀온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회초년생 때는 자동차는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 사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한 지 10년이 지나고 나이가 마흔 살인데도, 경제적 여유는 여전히 생기지 않았다. 돈을 모으려면 차를 사면 안 된다고 하는 재테크 유튜버에 말에 따르면 나는 아마 평생 차를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이번 생에는 차를 사지 말아야 함이 마땅한데, 그건 싫었다. 나는 직접 운전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었다. 마흔인데도 금전적으로 여유는 여전히 없으며, 결혼도 아직이고, 자녀도 없다. 그런데 나이가 더 들면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질 것 같았다. 운전을 배울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고, 그럼 내 인생이 더 평범해질 것 같았다. 경제적 안정과 결혼, 자녀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평생 운전을 못 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경제적 여유고 뭐고 모르겠고, 남들은 다 타고 다니는 차를 나도 한번 타보고 싶었다. 그리고 고령의 나이가 되면 운전면허를 반납하기도 하니까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더 미룰 수 없었다. 이렇게 몇 년째 운전을 배워야겠다 생각만 하다가 10년 된 중고차를 사버렸다.



차는 샀는데, 운전은 전혀 할 줄 몰라서 자동차 운전전문학원에 등록을 했다. 가끔 도로에 보면 교육용이라고 쓰여있는 노란색 차가 보이는데, 이 차는 택시가 아니므로 타면 안된다. 이 차는 조수석에 브레이크가 달려 있어서 같이 타고 계신 운전강사님이 위기의 순간에 브레이크를 운전자 대신 밟을 수 있게 되어있다. 자동차 사고가 나는 것보다는 낫지 라는 생각으로 70만원이나 주고 자동차 운전전문학원에 등록을 했다. 차를 먼저 샀으니까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시간당 만원에 내 차로 하는 1시간짜리 도로주행연수를 할 수도 있었는데, 운전에 자신이 없었다. 면허를 취득한 지 20년쯤 되서 신호등이랑 표지판부터 보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싶어서 비싼 값을 치르고 제대로 된 도로주행 연수를 받았다.



20년 전 처음 면허를 취득할 때에는 도로를 겁 없이 주행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20년 만에 운전을 다시 배우려니 너무 무서웠다. 옆에 선생님이 있어도 사고가 날 것 같고 30km 이상의 속도로 나아가면 사고가 나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들었다. 차선변경은 어찌나 어려운지, 좌회전 신호 앞에서 앞에 차를 따라가면 편한데 내가 좌회선 전용 차선의 맨 앞이면 내가 차선을 잘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1시간짜리 운전 연수를 하고 나면 너무 긴장해서 진이 빠졌다. 자동차 연수시간 10시간을 다 마칠 때에도 자신이 없었다. 강사님도 마지막 수업을 마치며 당분간은 혼자 운전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아버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자체적으로 연수를 했다. 이른 새벽에 파주 출판도시에 가서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우회전, 좌회전 연습을 하고 이른 새벽 마트 주차장에서 주차 연습을 했다.



아버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꽤 오랫동안 드라이브를 겸해 운전연수를 했는데, 사실 혼자서 운전한 적은 지금도 거의 없다. 지금도 아버지랑 차를 탈 일이 있을 때에만 가끔 운전을 하는 정도이다. 혼자 운전을 했을 때 사고가 날까 봐 두렵다. 그리고 겁이 많아서 도로 위에서 어떤 돌발상황이 생기면 아직은 대처할 수 없다. 텅 빈 주차장이 아니면 주차를 할 수 없다. 차를 사면 자유롭게 운전을 해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차를 산 지 1년이 다 되어가도 차 뒷면에 초보운전을 두 개 붙이고 왼쪽 문에 한 개, 오른쪽 문에 한 개 초보운전 문구를 붙이는 왕초보이다. 내 꿈은 왕초보에서 초보가 되는 것이며, 언젠가는 운전을 정말 잘해서 교외에 있는 미술관에도 가고 싶고,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멋진 카페에도 가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서 자동차 렌트를 하는 대신 굳이 내 차를 타고 남도에 있는 항구에 가서 선박에 내 차를 싣고 굳이 제주도에서 내 차를 운전하고 싶은 목표도 있는데, 아직은 먼 미래다.



초보 운전 시절 운전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아는 지인은 초보운전 때 차를 끌고 나갔다가 패닉이 되어 집에 돌아올 엄두가 안 나서 대리기사를 불렀다고 한다. 오후 두 시였고, 대리기사님은 술을 안 마신 것 같은데 대리를 왜 불렀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술은 마시지는 않았는데, 무서워서 운전을 못하겠다고 말하니 대리기사님은 자기가 조수석에 탈 테니 한번 운전을 해보라고 해서 대리기사님께 운전연수를 받으며 집에 돌아온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내 동생도 초보시절 그런 경험이 있는데, 차를 끌고 나갔다가 중간에 도저히 차 운전을 못하겠어서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아버지한테 차를 집으로 가져가달라고 읍소하고 거기서부터 지하철로 출근했던 적도 있다.



나는 뭔가에 익숙해지는 것에 오래 걸리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을 해야 운전이 익숙해질 것 같다. 혼자 운전해서 여행을 다니거나 야경을 보러 가거나 별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보고 운전의 꿈을 키웠는데, 차가 있어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차를 사면 운전을 잘하게 될 줄 알았는데, 차를 사도 운전을 많이 해야 운전을 잘하게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를 효과적으로 굴리지 못하고 세워놓는 것 같아서 차한테도 미안하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차로 인해 행동반경을 넓히고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는 사람들을 내 차에 다 태워서 어디 좋은 곳 갔다가 집에 한 명 한 명씩 떨궈주는 것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최근에 또다시 큰 용기를 내어 차를 끌고 나갔는데, 간선도로에서 빠져나가려고 가장 오른쪽 끝 길에 붙어있었다. 그런데 거기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서 빠져나갔어야 했다. 차가 많은 날이었는데, 간선도로에서 빠져나가려는 차들의 대기가 굉장히 길어서 가장 끝 차선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왼쪽으로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뒤에 차 여러 대도 잘못 들어왔는지 왼쪽으로 빠져나가길래 나도 그걸 보고 왼쪽으로 빠져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왼쪽으로 빠져나왔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놀랐다보다. 좌측깜빡이도 한참 켜고 있었는데, 내가 차선을 옮기려고 주저하다가 타이밍이 뭔가 안 맞았나 보다. 그 차는 내 왼쪽으로 와서 창문을 열더니 아주 욕을 해댔다. 그날 또 마음의 상처를 받고 무서워서 운전 못하겠다, 나는 언제쯤 운전을 잘하게 될 수 있나 자책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도로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꽉 막힌 도로에서 깜빡이 한참 켜고 있다가 들어갈 타이밍 못 맞춰서 욕을 먹는 것이라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다. 다음에는 더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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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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