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대
어릴 적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고, 이사를 하면 그전에 알던 모두와 단절되었다. 이사를 많이 다닌 것 때문인지 아니면 갖고 태어난 기질이 이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었다. 위기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할테니까 나는 애초에 위기가 생기지 않도록 견고한 일상을 만들어왔다. 다른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낯설었고, 가능하면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했다. 덕분에 살아오면서 혼자 부딪치며 손해란 손해는 다 보면서 살기는 했지만,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나뿐이었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폐 끼치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살면서 생기는 기쁜 일들은 결국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며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기쁨보다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더 커서 혼자있기를 선택해 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지만, 그보다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더 커서 나는 늘 혼자를 택했다.
이제는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져서 외로움을 느낄 틈조차 없지만, 과거에는 젊다는 이유만으로 연애기회가 종종 찾아오곤 했다. 이번 생에 연애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상대방이 워낙 좋은 분이었고, 끈질기게 나를 좋아해 주셨다.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연애는 모두 맞닿아있어서 이 셋 중에 뭐 하나만 잘하면 셋 다 잘하게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셋 다 어려운 사람이었다. 연애에는 관심이 없어서 이성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이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 중 반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맞닿아서 사회생활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어지간히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가와준 그 사람은 햇살 같았고, 그 햇살 같은 사람은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 걷는 데이트를 기꺼이 함께 해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자아를 찾겠다며 올레길, 바닷길, 갈맷길, 둘레길과 같은 걷기에 꽂혀있어서 아침에 만나 해가 질 때까지 같이 걷자고 하면 그 햇살 같던 사람은 폭염의 날씨에도 함께 걸어주었다. 그게 지금도 감사하다. 어쨌든, 그 연애를 하고 나서는 그 연애를 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연애를 통해 이 사회의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혼자 여행을 떠나던 사람이었고, 뭐든지 혼자 하던 사람이었다. 공연도 혼자 보고, 혼자 대중교통으로 땅끝마을까지 가서 보길도와 청산도, 완도 여행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혼자서는 항상 송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일행이 있는 손님을 만나면 자리를 바꿔주는 것은 나였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을 떨어뜨릴 수는 없으니까 항상 혼자였던 내가 배려했다. 나도 창가자리를 원하고, 예매할 때 나도 내 기분과 컨디션을 고려해서 특정한 위치에 예약을 한 것인데, 같은 돈을 내고도 희생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은 혼자 가는 사람이었다. 혼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배려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배려가 강요되는 상황들이 싫었다. 같은 돈을 내고 왜 혼자인 나에게만 배려를 요구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피해의식이 올라오고는 했는데, 이건 혼자 다니면서 누군가를 배려하다가 내가 되려 손해를 겪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너무 소중하고 귀한 한 끼라서 분위기 좋은 식당에라도 갔던 것인데, 많은 경우에 혼자 가면 너무 좁은 1인석 테이블이나 불편하고 부담되는 바(bar) 자리 혹은 벽을 보는 자리, 화장실 앞자리, 경치와는 가장 먼 주방과 가까운 자리처럼 혼자 온 사람이 아니라면 선호되지 않을 이런 자리를 안내받았다. 1인 손님이지만, 나에게도 너무 특별한 식사니까 두 가지 메뉴를 시킬 때도 많았다. 2인분 이상만 주문이 되는 식당이라면 나는 기꺼이 2인분을 주문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선호되지 않는 구석자리에 안내받아 고개 숙이고 얌전히 빠르게 식사를 하고 나와야 했다. 숙소도 마찬가지이다. 2인용 숙소를 이용할 때는 당연히 2인 기준 요금을 냈지만, 혼자이기에 식사를 두 번 할 수도, 서비스를 두 번 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야 남들 하는 여행도 혼자 할 수 있었다. 혼자서 남들이 하는 일을 나도 하려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한다. 같은 만족을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점점 피로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손해를 보면서 1인 가구의 생활을 영위하던 내게 결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만났던 햇살 같은 사람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꽃길이 되어주었다. 남녀커플이라는 이유만으로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면 당연하게 2인분만 시켜도 환영받았고, 언제나 제일 좋은 가운데 자리 또는 전망이 가장 좋은 자리에 안내받았다. 1인으로 갔을 때 보다 적게 시켜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혼자 갔을 때 혼자 간 것에 눈치가 보여 메뉴를 두개씩 시키고 음료도 시키고 그랬었는데, 커플이 갔을 때는 기본메뉴 두 개만 시켜도 되었다. 교통편도 마찬가지다. 커플로 다니면 옆에 모르는 타인이 앉을 가능성이 없어졌다. 낯선 사람이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통화를 한다거나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거나, 옆에 앉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까봐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니 이동이 한결 편안해졌다. 일행이 내 옆에 있다는 것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여행을 가더라도 비용을 나눠내니 혼자 여행을 갔을 때보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들었다.
여행지에서도 혼자 온 여자가 아니라 커플여행자가 되니까 타인을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가 없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나를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가족단위의 다른 여행객들로부터 소외되고는 했는데, 커플로 여행을 다니니 어디에서도 소외되지 않았다. 가족단위 사람들 속에서도 커플로 온 사람들 속에서도 전혀 소외되지 않아서 사회적 비효율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사회적 비효율이 혼자였던 나였던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다. 커플이 가서 좋은 경치가 보이는 제일 좋은 자리에 안내받는 것도 당연했다. 혼자 비싼 돈을 쓰면서 갔던 여행보다 커플로 저렴하게 갔던 여행이 더 마음 편했던 순간도 있었다. 이 사회는 모든 것이 2인 남녀 커플 기준인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아득바득 혼자서 남들 하는 거 나도 하면서 살고 싶어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살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단지 동행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쉽고 편했다.
결혼의 가능성도 열어두었기에 부모님께 그 사람을 소개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집안에서 ‘나이만 먹은 채 결혼하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결혼을 염두에 둔 성숙한 사람’으로 달라졌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옆에 이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나를 다르게 대했다. 나는 원래 혼자가 편하고 이번 생은 나를 이해하는데 온 생을 다 써야 간신히 나를 알 것 같은데, 옆에 이성이 한 명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나를 있는 그대로의 1인으로 인정해주기보다는 결혼을 아직 안한, 미혼의, 아직 혼자인, 이런 수식어가 따라다녔는데,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한다고 밝히자 그제야 나는 사회의 이너서클에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 이전에 혼자 여행을 할 때에는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누군가의 걱정을 사고 우려할 일이었는데, 함께 갈 사람이 있음에도 혼자 여행을 가면, 그건 선택가능하며 혼자가 될 수 있는 여유를 누리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그대로인데 내 옆에 파트너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내 행동에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한 사람들이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후광효과 때문일 것인데,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일종의 사회적 검증을 받았다는 증거 같아서 그걸 얻지 못한 나는 평생 내가 결혼을 못할 정도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만 같다. 큰 결격사유가 있어서 결혼을 못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건강하게, 경제적으로 건실하게 살아야만 할 것이다. 혹시라도 아프거나 수입이 끊어지면,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떻게 살아갈 거냐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어디가 아파서도 안되고 돈을 계속 벌어야만 한다. 결혼의 기회비용이 이렇게 큰 것이었음을 미리 알았다면 어렸을 때 결혼을 했을 텐데, 결혼적령기라 불리는 그 나이에는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결혼을 안 했고, 그 대가가 너무 크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하루 종일 같이 10km 이상을 함께 걸어주던 그 햇살 같은 사람과는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인간관계가 잘못되었을 때 원인을 스스로 돌리는 것이 익숙한 내가 생각해 봤을때는, 아마 내 안의 모서리 하나가 그 사람을 못견디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갈등을 현명하게 봉합하는 방법까지는 미처 몰라서 결혼까지 가지 못한 것같다. 그런데 이 연애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햇살 같았던 사람의 따스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에서 커플들에게 얼마나 너그럽고 다정한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때 받았던 커플을 향한 친절과 배려는 과거의 내가 혼자서 모든 걸 감수하며 살아가던 시간들과는 온도가 달라서 그 차이를 알아버린 후로는 혼자서 기꺼이 해내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혼자서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뒤로는 거리낌 없이 뭐든 혼자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이게 다 그 망한 연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