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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가게가 맛있다

시골마을 공판장이 식당

by 타짜의 클리닉

며칠 전 아내가 느닷없이 아침에

“덕유산에 눈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간밤에 대전에 눈이 엄청나게 내려 아내는 눈꽃이 보고 싶었나보다. 지난달에도 눈을 보러 덕유산 향적봉을 간 적이 있던 터라 실시간으로 국립공원 날씨를 보는 사이트에서 눈이 많이 쌓인 걸 확인하고 출발했다. 지난달엔 눈산이었지 나무에도 눈꽃이 필 만큼 설산은 아니었다. 1년 넘게 우리 가족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한 스탭이 그만두는 날이라, 마지막 머리 손질을 일부러 하고 끝난 시간은 12시였다. 늦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덕유산까지는 1시간이고, 점심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도 2시엔 향적봉 매점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비가 엉뚱하게 안내한 덕분에 우리는 식당을 찾는데 40분을 허비했다. T맵을 이용했는데 상호가 검색되지 않아 주소지를 입력했는데 가게 뒤편을 알려줬다. 가게는 덕유산을 가는 구불산길에 붙어 있었고, 그 뒤는 날망에 마을이 있었다. 그러니 네비도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저 뒤쪽을 알려줬을 뿐이다.


KakaoTalk_20250131_155353765_18.jpg 이렇게 4차선 도로인데 우린 여길 못찾았다.



눈이 쌓인 시골마을길은 아슬아슬했다.

3개월차 초보의 운전대를 10년 무사고인 아내에게 넘기고도 우리는 그 마을 뒤편 외길에서 30분을 헤매야 했다. 핸드폰의 카맵으로 설정을 다시 했지만, 이미 멘붕에 빠진 우리는 뻔히 가게가 보이는데도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에 주차를 하고 눈언덕을 기어 오르기로 했다.



KakaoTalk_20250131_155353765_04.jpg 가게 앞은 넓은 도로인데, 네비는 뒤를 알려줬다.



우리 같은 손님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미 수북한 눈에는 깊은 발자국이 겹쳐 다져져 있었다. 그 덕에 우리는 눈밭에 빠지지 않고 요령 있게 길을 오를 수 있었다. 아내는 도대체 어떤 식당이길래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까지 가려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식당 문을 열고는 내 의도를 이해했다.

식당같이 않은 식당,이었다. 국도의 작은 휴게소라고 해도 좋고, 시골에 규모가 큰 슈퍼라고 해도 괜찮고, 마을에서 키운 나물과 온갖 것들을 모아서 파는 직판장이라고 해도 그만일 그런 가게였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면 보이는 다양한 말린 나물과 버섯, 기름병에 쌀포대까지 종류도 참 다양했다. 그 길을 지나면 입식 테이블이 날망쪽으로 붙어 있고, 주방에 붙은 좌식 방에도 테이블이 10개쯤 있었다.



KakaoTalk_20250131_155353765_16.jpg 마을 농산물을 함께 판다.


명절 끝이긴 해도 20개가 넘는

테이블엔 손님이 가득했다. 주인집 아들이 분명한 서빙은 다행이 친절하게 “음식이 오래 걸릴테니 생각하시고 주문 하세요”라고 말했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이젠 컨설턴트 찜쪄먹는 경지다. “오늘 청국장 맛은 크게 걱정할 게 없겠어요”



맞는 말이다.

만원짜리 청국장은 그 맛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분위기가 그걸 다 치뤘기 때문이다. 식당 같지 않은 분위기라 밥맛은 다를 게 분명했다. 찾아온 수고가 아깝지 않을 게 확실했다.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인아들의 친절에 비해 음식은 빨리 나왔다. 광주리에 담긴 반찬도 별건 아니었지만 맛있었다. 그냥 맛있게 잘 먹었다. 다음에도 무주리조트나 덕유산을 가는 길이라면 들려서 다른 것도 먹을 생각이 드는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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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이고 만원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식당 인테리어를 중시한다.

거기에 많은 돈을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이해한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내 집처럼 써야 하는 식당이니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다. 문제는 비용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변별력이다. 모두가 인테리어를 하니 잘해두어도 거기서 거기다. 마치 모두가 성형을 받은 얼굴이라 이쁘지만 튀지 않고 평균치가 되어버리는 성형의 부작용같은 셈이다.



KakaoTalk_20250131_155353765_15.jpg 손글씨가 입혀진 것도, 이런 분위기에선 매력이 된다.



인테리어가 괴팍할수록 재밌다.

이게 인테리어야, 할 정도는 흥미롭다. 천연덕스럽게 인테리어에 일절 손대지 않은 집은 묘하게 끌린다. 꾸밈의 차별화로 선택하는 손님들도 많지만, 꾸미지 않는 차별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탓이다. 워낙 좋은 것을 많이 보다보니 이제는 허름한 것이 더 끌리는 자연스러운 심리의 이치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인테리어에 많은 돈을 쓰는 걸 반대한다. 있는 그대로의 날 것에 재치있는 소품을 이용해 식당다움을 꾸미라고 조언하는 편이다. 인테리어 비용에 비하면 소품비 천만원이면 훨씬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맛으로 먹는 식당도 흔하지만,

맛보다 다른 것에 끌려서 먹게 하는 식당도 늘어나는 추세다. 더 이상 손님들은 배가 고파서 먹지 않는다. 먹기 위해서 식당을 찾지 않는다. 즐기기 위해서 색다른 식당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정말 열심히들 찾는다. 사악한 입지일수록 가보고 싶어 픽을 한다. 시골 외갓집같은 분위기며,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구멍가게에서 파는 흔한 주물럭에 환장을 한다.


20250203_074927.png 껌파는 매대 옆에 두부도 파는 슈퍼가 흔할까?



내가 먹은 컵라면 중에 3위 안은,

백두산 천지 매점?에서 먹은 신라면이었다. 끓고 있어야 할 온수가 미온수여서 5분이 지나도 면발이 익지 않았지만, 김치도 없었지만, 앉을 자리도 없어 서서 먹었지만 나는 거기서 먹은 컵라면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분위기는 더 이상 경험할 수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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