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특선의 잘못된 해석
10년 전 로드뷰에 있는 간판과 지금도 같았다. 주인도 그대로인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평일 점심에 손님은 18개의 테이블 1회전은 될 듯 싶었다. 주방에 2.5명, 홀 1.5명이었으니 그정도는 손님이 있어 보였다. 아쉽다면 나이 든 손님이 8할이었다는 점이다. 간판이 보쌈이라서일까? 10년이나 되었는데 네이버 리뷰가 100개가 되지 않아서일까?
오피스 상권이 아닌, 아파트가 건너편이고 상가주택이 모인 작은 먹자상권이다. 그런데 손님층은 4~50대 이상에 6~70대의 노인들이 섞였다. 주차장도 없고, 주차를 아무데나 할 수 있는 사정도 아니라 젊은 손님들이 오지 않는 건지 궁금했지만, 궁금함보다 더 아쉬웠던 건 그 맛있는 보쌈을 먹는 손님은 우리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중은 43,000원 대는 49,000원이었다. 그리고 가격 옆에 인원수가 표기되어 있었다. 2인, 3인, 4인으로였다. 37,000원은 2명이 먹는 가격이었다. 1인당 19,000원에 육박하는 가격이니 점심에 먹기엔 다소 비쌌다. 그래서인지 손님 대부분은 점심특선을 먹었다. 12,000원짜리 들깨(칼국수)보쌈정식이나 메밀(국수)보쌈정식을 먹었다.
‘점심에 한정하여 특별히 만들어 파는 음식’이다. 저녁이 강한 식당에서 고육지책으로 점심에 손님을 채우기 위해 가격이 조금 낮은 대체 음식으로 만든 게 점심특선이다. 고기집에서 점심에 차돌된장찌개를 팔고, 횟집에서 점심에 회덮밥과 알탕을 파는 게 그런 경우다. 점심값으로 주머니를 열기에 적당한 특별한 메뉴가 점심특선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어느덧 ‘저녁에도 파는 걸, 점심에 특별히 싸게 파는 같은 메뉴’로 점심특선을 사용하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팔아야 할 점심특선을, 궁여지책으로 팔고 있으니 안쓰럽다.
소중대로 파는 음식이기에 점심에 2명이서 4만원이 넘는 아구찜을 먹기엔 부담스럽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저녁에는 팔지 않는 동태탕을 1인분에 9천원에 팔 곤 한다. 동태탕은 오직 점심을 위해서만 만든 메뉴다. 간판은 아구찜인데 뜬금없이 점심메뉴로 간판에는 없는 동태탕을 또 알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아구찜을 알리는 시간이 저녁으로 한정되어 더 줄어든다는 점이다. 아구찜 잘하는 집으로 소문나는 폭이 좁다는 말이다.
궁여지책으로 아구찜을 점심특선이라는 명목 아래, 가격을 할인해서 파는 선택을 한다. 소짜 4만원짜리를 3만원 혹은, 2만5천원으로 커플 아구찜을 만들어 파는 궁여지책으로 대처한다. 이때 문제는 저녁에 정상가격으로 파는 소짜 4만원을 비싸다고 시비거는 손님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점심에 둘이서 아구찜을 싸게 먹었기 때문에 저녁에 소짜 아구찜은 3명이 먹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주인의 소짜와 손님의 소짜는 충돌이 일어난다. 결국 승자는 손님이다. 주인이 3명에게 소짜를 거절하는 순간 손님은 일어설 것이고, 주인은 팔지 못할 뿐이다. 만일 그 식당이 감자탕집이라면 손님은 영리하게 전골 소짜를 시키지 않고, 뚝배기 3개를 시키는 걸로 주인을 골탕? 먹인다. 감자탕 전골 소짜가 뚝배기 3개보다 대체로 비싸기에 식당은 3개를 팔았어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보다 더 큰 안타까움은 뚝배기를 먹은 손님은 재방문이나 소문의 새끼를 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골의 크기와 뚝배기의 크기가 달라 눈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는데 어떤 소문의 씨앗을 뿌려줄 것인가.
점심특선으로 1인분 코다리찜을 파는 것도 궁여지책이다. 코다리 소짜는 3.5만원인데 점심특선 1인분은 1.2만원이다. 점심특선으로 두명이서 24,000원을 썼는데 저녁에 코다리 소짜 3만원에 먹으려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까우니 재방문의 텀이 길어지고, 북적임의 저녁은 기대를 할 수 없게 된다.
보쌈을 파는 식당이 점심에 들깨칼국수와 메밀국수를 팔고 있었다. 저녁엔 팔지 않는다. 저녁에 팔지 않을 메뉴를 점심특선으로 팔고 있으니, 보쌈이 소문나는 시간은 저녁 뿐이다. 보쌈을 37,000원에 둘이 아닌 셋도 먹게 했다면 어떨까? 들깨보쌈정식 12,000원을 3개 시키면 36,000원이니 별 차이가 없다. 들깨 칼국수 한그릇씩에 보쌈을 맛보기로 먹은 3인과 보쌈이 먹고 싶어 보쌈으로 점심에 배를 채운 3인의 만족도는 어느 쪽이 높을까?
그렇다고 셋이 먹기 넉넉한 정도는 아니었다. 보쌈을, 점심에, 셋이 37,000원에 먹는다면 양을 조금 양보할 수 있다. 세명의 지출을 감안하면 배부르게는 과한 요구라는 것을 손님도 안다. 그래서 내가 주창하는 것이 동수론이다. 3명은 2인분, 4명은 3인분만 시키게 하라는 거다. 김치찌개 2인분이나 3인분이나다. 부대찌개 4인분을 먹을 때 제일 돈이 아깝다. 3인분으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4인분을 시켜야 하고, 그렇다고 배가 부른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야 보쌈이 생각나면 점심이고 저녁이고 찾는 식당이 된다. 하루 종일 그것이 먹고 싶은 손님이 쌓여야 식당이 강해진다. 점심엔 딴거, 저녁엔 원래거를 파는 이중전술은 그만큼 인정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저녁에 팔던 걸, 점심이라고 싸게 파는 특선의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손님들은 당연하게 점심에 먹은 가격을 저녁에도 내려고 할테니, 주인의 마음피로만 깊어질 뿐이다. 무조건, 가격을 달리 이중으로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 해결책은 매우 간단하다. 소중대 인원수에 대한 주인의 생각바꿈이다. 소짜는 세명도 시키는 것, 그래서 셋도 먹을만큼 담아야 하고, 셋도 먹을 재료비에 맞는 가격으로 애초에 책정하라는 소리다. 3명이 나누어 내기에 적당한 가격으로 매겨서 둘에게도 팔라는 말이다. 둘이 비싸지만, 셋은 싼 가격대가 있다. 그걸 찾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중짜는 4명도 시켜도 되고, 대짜는 5명일 때나 받는 주문이라고 맘을 정하면 세상 편해진다. 손님과 실랑이를 할 까닭이 없어진다. 고육지책도 필요 없고, 궁여지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비싼 소중대를 얼마든지 팔아낼 수 있다. 필자가 만든 아구찜의 소짜 가격은 어느덧 5만원이다. 다른 집 대짜보다 비싸다. 그래서 우리 아구찜집들은 4명이 소짜를 시켜도 뭐라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님도 자존심이 있으니 4명은 중짜를 시킨다. 대신 훨씬 더 푸짐하게 먹으니 손님도 만족이다. 이런 셈을 쓰면, 점심특선이라는 건 메뉴판에 내어줄 자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만든 식당에선 점심특선 자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