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었다고 다 멋진건 아니다
대전 광천식당의 두부두루치기는 먹어보기 전에는 전혀 다름을 모른다. 두부가 으깨지지도 않고 탱탱한데 뻘건 양념 범벅인 그 맛은 오직 광천만이 만들 줄 아는 비법이다. 대전에 수많은 두루치기집을 가봤지만 대게는 두부조림에 가깝다. 두부가 신선하게 제 모습을 갖추면서 그 이색적인 양념맛을 간직한 두부는 단언컨대 없다. 그걸 만들줄 안다고 사기 치던 사람을 봤지만 역시나 였다.
대학생때 가봤으니 벌써 35년전이다. 그때도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전국구 식당이라 평일에도 대기표도 선착순이다. 1시반이면 늦다. 4시 반에 다시 대기표를 받으러 와야 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35년전에는 두부 한접시(2인 기준)에 4,500원인가 했었다. 지금은 16,000원이다. 여기에 면사리를 시키면 2천원이다. 대게는 면 하나, 밥 하나를 시켜 19,000원이면 이색적인 두부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메뉴를 절대 늘리지 않는다. 오징어두루치기를 병행하는데 난 수십번을 갔지만 두 번인가 먹어봤고 오직 두부로만 먹는다. 다른 테이블을 봐도 9할이 두부다. 오징어는 여럿일 경우에 맛보기로 시키는 정도다.
직영점을 더 내지도 않는다. 아들들(둘로 추정한다)에게도 내주지 않는다. 오직 광천의 두부는 그 자리에서만 먹을 수 있다. 자식에게도 내주지 않는데 남에게 내줄까? 가맹문의는 단칼에 거절이다. 내 또래인 큰 아들이 지금은 아버지 대신에 카운터에서 자리를 안내하고 계산을 한다. 목에 화려한 금목걸이에 팔찌를 차던 잘생긴 멋쟁이 둘째 아들은 수년전부터 보지 못했다.
그 광천식당 근처에 노포가 2개가 더 있다. 하나는 중국집이고, 하나는 **집이다. 중국집도 줄 서야 하는 집이다. 반면에 **집은 모르겠다. 자세히 본 적이 얼마전부터라 아는 바가 없다. 광천식당을 수십년째 다니면서도 거기에 50년된 **집이 있는 건, 최근에 알았다. 육회비빔밥이 맛있다는 권유로 알게 되었다.
어제는 평일이라서 일부러 늦은 점심이면 먹을 줄 알았다. 주말에는 오픈런을 여러번 봤기에, 주말에 전국에서 성심당 빵집을 다니러 온 사람들이 광천을 경유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평일 2시면 괜찮을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목요일 1시 40분이었는데 대기표가 마감이었다. 3시까지가 점심이었는데 이미 그전에 대기표까지 다 나눠준 후였다. 정말 먹고 싶어서 오랜만의 방문이었는데 허탈했다.
그래서 1분 거리의 **집을 갔다. 테이블이 25개가 넘었다. 인테리어는 최신식이었고, 이곳저곳 돈을 많이 들인 흔적에 놀랐다. 노포의 맛이 없는 노포라는 점에 아쉬웠다. 이미 밖에서 봐서 알았지만, 메뉴가 너무 많았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메뉴를 만드는 주방장은 얼마나 손이 빠를까 궁금했다.
1시 45분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3시에 브레이크 타임이에요”라고 쏘아 부쳤다. 2시 반도 아닌데 왜 저런 소리를 할까 싶었다. 아내는 육회비빔밥을 나는 내장탕을 시켰다. 내장탕은 13,000원이었다. 그리고 주방을 봤다. 아주 젊은 청년이 보였다. 나이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맛에 대한 기대치는 사라졌다. 소분한 재료를 레시피대로 넣고 끓이는 아무나 만드는 탕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음식은 그냥저냥이었다. 하지만, 김치가 너무 맛있었다. 그 유명한 명동교자의 김치와 생김새며 맛이 비슷했다. 매운 정도는 더 강해서 먹는 내내 땀을 흘려야 했지만, 너무 맛있어서 2번 더 리필을 했다. 물론, 셀프였다. 김치는 맛있었지만 수십가지 메뉴가 그 맛을 살리지 못했고, 김치는 정말 전국구 소리를 들을만 했지만 그걸 강조한 문구나 포스터 스토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밥을 다 먹을 때, 식당 직원들이 점심을 준비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 주방은 모두 남자였는데 20대 청년들이었다. 둘은 외국인처럼 보였다. 외국인 청년이 만든 50년 노포의 내장탕이라니.. 실망스러웠다. 레피시대로면 아무나 만들어도 되는 음식인 이유는 메뉴가 많아서였다. 메뉴가 많으면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몰리는 시간에 그 많은 메뉴를 골고루 팔려면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시스템에 어떤 깊은 맛이 있을까?
메뉴판 앞자리에 ‘가맹문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광천식당은 자식을 통해서도 직영점을 늘리지 않는데, 여기는 아무에게나 50년의 세월을 팔겠다는 소리에 입맛이 썼다. 도대체 수십가지 메뉴를 뭘 어떻게 알려주고 만들어 팔라고 할 수 있는지 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