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김치가 유명해서 산행길 곁으로, 갓김치를 파는 판매점이 즐비하다. 저마다 솜씨를 뽐내고, 방송에 나간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면서 그 많은 김치를 현장에서 담그면서 가벼운 산행을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김치를 팔고 있었다. 직업이 20년쯤 지나면 눈썰미가 남달라진다. 휙 스쳐도 중상,이라고 농을 할만큼 장사를 잡아채는 눈썰미에는 30초면 충분하다. ‘아, 저집은 저게 특기구나, 저렇게 파는 장사를 하는구나’
한 집은 김치를 1kg, 2kg 식으로 소분, 포장해서 손님이 집어들기만 하면 되게끔 진열대에 빼곡이 김치를 진열해두었다. 그것도 김치가 육안으로 보여지게 투명 비닐에 담았기에 눈으로 양을 가늠하기도 좋았고, 정갈해보였다. 좋은 방법인지 손님이 제법 많았다.
다른 집은 택배박스를 잔뜩 쌓아놓았다. 그 박스에 김치가 담긴건지는 모르지만 옆집에 진열한 김치양에 2배는 됨직한 스티로폴 박스에 이미 김치가 담겨진것처럼, 그래서 전국으로 손님 밥상으로 출발하는 것처럼 연출해두었다. 역시 쉽사리 손님들이 그 집을 기웃거렸다. 얼마나 유명하길래 저렇게 택배가 많은거야, 질문하듯 사람들이 모였다.
필자가 선택한 김치가게는 색달랐다. 김치를 종류별로 시식하게끔 썰어두었다. 마치 마트에서 의 시식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그 집 말고도 다른 집들도 상당히 사용중이었다. 단지, 이 집은 막걸리까지 준비해두었다. 그것도 맛있으라고 항아리에 담았고, 시원하라고 얼음생수를 담가 진짜로 시원했다. 구매해야만 먹는 막걸 리가 아니라, 막걸리 한잔 먼저 마시면서 김치를 살건지 말건지 결정하라는 방식이었다.
내가 항시 주창하는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그런 장사법이었다. 그래서 맘에 들었다. 그리고 저울을 놔두고 즉석에서 양을 재서 한주먹 더 얹어주는 서비스도 서슴치 않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꼬들배기는 kg에 15,000원이었는데 1.3kg을 담았다. 아내가 파김치는 얼마냐고 하니까, “원래 15,000원인데, 어떤 손님이 위에서 13,000원에 팔더라는 소리에 나도 13,000원을 받는다”고 눙치는 아주머니가 외려 믿음직해보였다. 그래서 파김치를 선택하자 역시나 이번에도 눈금은 1.2kg을 가리켰다. 그 안에 나는 막걸리 2잔을 마셨다.
그걸 훔쳐본 아주머니가 “술은 홀수로 마시는거래요. 한잔 더 하셔요” 그 말 한마디가 맛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총각김치 2kg을 담아달라고 했다. 이번엔 저울은 정확했고, 대신 “여긴 갓김치가 유명한 곳인데 그건 빼고 사가시는 손님은 처음이네요”라면서 총각김치에 갓김치를 한웅큼 올려담았다. 꽤 많은 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막걸리 3잔에 김치는 4kg을 샀고, 덤으로 1kg쯤 얻었다. 먹어보고 다음엔 택배로 주문할 생각이다. 원래 생각은 꼬들배기 1kg만 재미로 사려던거였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돈 쓰는 기분에 좋았고, 좋은 김치가게를 발견한 것 같아 반가웠다.
첫째집은 투명한 비닐에 김치를 소분포장해서 집어들기 좋게 한 점이 좋았다. 구매에 걸리는 시간이 가장 짧다. 그러나 어떤 손님에게는 이미 소분한 그 양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저울을 놔두면 되는 간단한 약점이다. 그 약점이 문제는 아니다. 다만, 너무 빠른 거래인 탓에 주인과 손님이 스킨십을 나눌 시간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면 아쉽다.
둘째집은 손님을 끄는데 포인트가 뭔지 무섭도록 정확히 아는 가게다. 장사에서 최고의 인테리어는 붐비는 손님이다. 판매점에서 사람이 사람을 꼬이게 하는 건 이치다. 군중심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가한 곳은 여전히 한가하고, 바쁜 곳만 더 바쁘다. 그것처럼 전국 택배가 많다는 것을 암시하는 택배박스는 손님을 기웃거리게 하는데는 그만인 포인트다.
그러나 필자는 장사에선 스킨십이 최고라는 지론을 가진 탓에 세 번째 장사를 선호한다. 김치가게가 김치를 판다는 말보다 “막걸리 한잔 시원하게 드세요. 공짜에요”라고 말하니 그 배포에 걸음이 멈춰진다. 김치를 사먹으면 주는 셈은 누구나 하지만, 여기처럼 사든 말든 막걸리 한잔, 두잔 먹게 놔두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얌체가 두려운 장사는 그런 베품을 먼저 꺼내지 못한다. 이미 그정도 내공은 뛰어넘었다는 소리다. 거기에 저울을 가운데 떡하니 놓고 손님이 주문한 정량을 확인시키는 것고 바람직했다.
이불밖은 위험해라는 우스개소리처럼, 세상은 뒤통수가 난무한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코베어가는 건 일상이다. 주인의 웃음에 마음을 놓으면 내 지갑을 털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장사는 신용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그 신용을 파는 장사는 드물다. 떡라면에 떡 5개가 전부인데 500원을 더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 거리, 저울을 손님 눈앞에서 재서 담아주는 집은 당연히 귀했다. 저울눈금을 속인다는 것도 새삼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렇게 저울을 이용해 양을 보여주고, 한줌 더 담아서 눈금이 더 처지는 것까지 확실히 확인을 시켜주면서 주인이 던지는 멘트들은 단골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술은 홀수로 먹느거니 한잔 더 하세요”
“갓김치 빼고 다 사셨네. 갓김치 서운하니 그냥 드릴께요”
“드셔보고 맛있으면 전화로 거세요. 다시 올 때 사려고 하지 마시고”
장사는 하기 나름이다. 맛있어요. 정직해요. 싸게 팔아요는 현명한 주인의 언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