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많아도 결국은 본처다
47살에 내 집을 장만했다. 그 전에는 남의집살이였다. 그래서 한번도 집을 꾸미려고 하지 않았다. 떠날 집, 남의 집이었으니까. 하지만, 47살 내 집에는 공을 들였다. 어차피 평생을 살 내집이었으니까 뭐 하나를 사도 좋은 걸로 사들여 집을 채웠다. 그래서 집이 좋았다. 집에 있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그 좋은 집을 4년반만에 세를 주고 이사를 갔다. 불가피한 이유로 다시 남의집살이를 시작했다. 3~4년만 살 집이라서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다. 아쉬운게 있어도 참았고 필요한게 있어도 모르척 했다. 삶의 질은 다시 떨어졌고, 집에 정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4년을 약속해 놓고 2년 반만에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이사를 했다. 당시의 집은 점점 싫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자영업자 중에서 식당을 정말 진심, 애착으로 꾸미는 곳이 있다. 바로 만두전빵이다. 하도 애정을 갖고 식당을 가꾸기에 나는 자가인줄 알았다. 주차장 바닥을 당신 돈으로 보수한다길래 진짜 자가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임차인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남의 집인데 뭘 그렇게 애지중지 살피고 고치고 매만지시냐?” 물었다. 주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럼 집주인이 꾸며주나요? 손님이 고쳐주나요? 내가 쓰는 동안은 내가 이 집에 주인이지요” 그때 머리를 한방 맞았다. 그래 맞다. 한치의 틀림도 없는 말이다. 내가 쓰는 동안은 내가 주인이다.
대전에서 두 번째 남의 집 이사를 하면서 만두전빵처럼 하기로 했다. 내가 전세를 사는 동안은 내 집이다. 내 집이니까, 내가 가꾸는 게 맞다. 집주인더러 왈가왈부할 거 없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약간만 눈 감으면 멀쩡한 벽지를 새로 도배했다. 250만원을 주었다. 고장난 등을 고치고 전구를 사와 갈아끼는 일도 기꺼이 내 돈을 썼다. 세면대 하수관도 새로 교체했고, 에어컨 분해청소에도 40만원을 지출했다. 에어컨은 내 집에 살면서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남의 집 천정에 매달려 잠시만 쓰는 에어컨이었지만 청소를 강행했다.
그렇게 주인이 지출해줘야 할 돈을 내 돈으로 써가면서 집을 고쳤다. 20일이 걸렸다. 하지만 즐거웠다. 내 집이라 생각하니 귀찮지 않았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이사를 오면서 버린 만큼 사들였다. 내 집에 활력을 주기 위한 꾸밈이라서 마음껏 사들였다. 자동으로 뚜껑이 열리는 쓰레기통과 장식용으로 쓰이는 강아지 인형도 사서 현관문 앞에 세워놓았다. 벽에도 조명이 들어오는 시계를 구입해 걸었고, 내 집이니 깨끗한 청소는 필수, 로봇 청소기도 새로 구입해 툭하면 일을 시켰다. 7년을 알뜰히 사용한 안마의자를 무료 당근하고, 내가 하루의 상당 부분을 이용할 나만의 소파를 구하는데도 큰 돈을 썼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습관에도 변화를 줬다. 전에는 운동을 할 때, 땀이 날거라는 생각에 가장 후글근한 옷을 입고 걷고 뛰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운동하는 동안에 멋진 폼이라면 내 기분이 좋을거라는 생각에 운동화도 4켤레를 다시 구입했다. 좋은 옷을 꺼내 입었고, 그날 복장에 어울리는 운동화로 갈아신으니 역시나 내 기분이 좋았다. 운동이 하고 싶어 새벽에 게으름이 사라졌다.
이 모든게 결국은 나를 위한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아내의 운동에도 여러벌 옷을 사주었더니 역시 아내도 기뻐했다. 그렇게 쓴 돈은 6년(전세 2년+ 갱신 2년+ 재계약 2년)을 산다고 치면 1년에 100만원이다. 한달로 따지면 1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13만원짜리 무제한 핸드폰 요금과 비교하면 왜 그 돈을 아끼고 살았는가 아쉽기 그지없다. 깨우침은 그래서 감탄이 따라온다.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 건물주를 잘 만나는 확률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나쁜 건물주들이 흔하다. 개인이 피땀으로 손님을 줄 세웠더니 자기 가게 자리가 좋아서라고 월세를 올려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다수의 식당 세입자들은 식당 꾸미는데 주저한다. 어차피 나갈(쫒길) 건데 여기에 뭘 자꾸 돈을 들이냐는 게 이유다. 맞는 말이고 그동안은 수긍해주었다.
하지만, 만두전빵을 보면 틀려도 많이 틀린 생각이다. 나를 위함이다. 주인이 기분이 좋아야 식당에 출근하는 일이 지치지 않는다. 그런 주인의 온기가 손님에게도 전해지고, 철마다 변하는 식당 분위기에 손님이 신뢰로 겹겹이 쌓인다는 것을 나도 드디어 알아버렸다.
내가 쓰는 동안은, 내가 사는 동안은 조강지처 대하듯 가꿔야 한다. 남이 아니다. 내 평생을 살아줄 조강지처다. 조강지처를 위해 쓰는 돈이 뭐 아까우랴. 그래서 내 식당에 이걸 대입하면, 계약기간 동안 월세를 내는 가게여도 사랑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