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되어야 빈자에서 탈출한다
대형마트를 갔다. 가까웠지만 생활반경의 방향이 달라 처음 간 곳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만든 그 유명한 대형마트는 맞았다. 주차장 진입로에 진입 시각을 체크하는 차단기가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평일 3시의 한가함이 생각보다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없을수가 있을까 할 정도였다. 손님이 되어줘야 할 사람이 적으니 매장 관리 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시식코너조차 없었다. 아니, 그건 3시라는 시간 탓이라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해 무려 40% 할인을 하는 스티커가 곳곳에 붙었다. 생물을 취급하는 코너는 동네 슈퍼처럼 진열상품이 적었다. 반도 차지 않았다. 대기업이 만든 대형마트에서 이런 경험은 아주 낯설었다. 아파트 천세대를 보고 문을 연 슈퍼보다도 썰렁했다. 마트에서 만든 신선식품도 구색을 갖추느라 3~4개가 전부였고, 그래서 오히려 그건 오늘 중으로 팔리지 않고 내일 되어 40% 할인스티커를 덧대어 입을 것이 괜히 확실해졌다. 평일 오후라쳐도 수백명은 있어야 하는 마트 안에는 수십명이 지루하게 상품을 건성으로 뒤적거렸고 계산대는 굳이 캐셔가 필요치 않았다. 저마다 구매한 카트의 양이 적어서 셀프계산대로도 충분했고, 우리 역시 7개를 샀기에 셀프로 값을 치뤘다. 그리고 나가면서 주차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바로 이게 악순환이다. 손님이 적어지면서 마트는 물건을 적게 진열하고, 물건이 없으니 손님은 더 적어질테고 마트는 문을 열어 생기는 이득이 적자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수천평이나 되는 큰 덩어리 건물은 폐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인근에 사는 주민은 더 이상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지 못하는 불편함을 떠안게 될 것이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팔아주지 않으니 기업은 이익을 챙길 수 없고, 도시는 사람은 있지만 인프라가 없는 횡량한 도시가 될 것이다. 악순환의 끝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개인들이다. 개인들은 이제 그 도시에서 신선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직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냉동이거나 품질이 안좋거나 아니면 비싼 값을 치러야 구하는 신선식품을 먹게 될 것이다.
손님은 메뉴의 종류를 보고 주방에 사람이 많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막상 주인 혼자 저 많은 메뉴를 만든다는 것을 안 순간 절망한다. 그러나 절망도 착한 손님이 주는 관심일 뿐, 대부분의 손님은 외면으로 관심을 끈다. 누가 봐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메뉴를 메뉴판에 붙이는 자체가 악순환이다. 4명의 손님이 3가지를 4인분 시켰을 때 그걸 조리하는 주방도 화가 나지만, 기다리는 손님도 짜증이 난다. 그 짜증의 원인이 식당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손님은 굿바이를 택한다. 동시에 만드는 여러 개의 음식이 어찌 맛있을까? 혼자서 면과 밥 그리고 요리를 동시에 만드는데 그게 정말 맛있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로또가 내 인생에 없는 단어이듯이, 당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안되는 내 전재산을 걸어도 나는 이길 것이 분명하다.
대기업이 만든 대형마트도 시대의 흐름(인구가 줄고, 비대면 주문의 일상화)에 따라 존폐가 위험한 지경이다. 그것처럼 백화점식 메뉴판으로 장사하던 때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일이다. 그걸 아직도 고수하는 식당들을 볼 때 내 슬픔은 찰랑거린다.
세종보다는 대평리가 어울리는, 여전히 지금도 시골마을인 그곳에 식당이 있다. 처음 갔을 땐 너무 많은 대기에 돌아섰고 어제는 건강 때문에 쉰다는 안내문에 각오했던 기다림도 갖지 못했다. 일부러 1시를 넘겨 갔지만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9천원짜리 제육백반이 소문난 곳이다. 푸짐하고 맛있다고 제육백반 먹으로 도시 사람들이 차를 끌고 시골 마을을 시끄럽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11시부터 1시반까지 딱 2시간 반을 영업하는 그게 끌려서 궁금한 식당이다. 테이블은 몇 개며, 일하는 손은 얼마나 되며 주로 사람들이 먹는게 뭔지 확인하고 싶었다.(예약하면 닭볶음탕 등등도 있다)
당연히 주변은 아파트촌이었고, 당연히도 주차는 하기 어려웠다. 주차장보다는 건물 하나라도 더 지어야 하는 도시는 늘 주차가 어렵다. 이미 시작부터 난관이다. 입장을 기다리는 기분 좋은 난관이 아니라 주차로 인한 짜증의 난관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온리원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메뉴는 제육과 콩나물밥 딱 2가지다. 그걸 1인 식판?에 정갈하게 담아주는 정식이라 플랜B로 염두에 둔 식당이었다. 영업시간은 저녁 8시까지다. 플랜A로 선택했던 1시 25분 끝주문과는 확연한 차이다. 대신에 온리원. 12,000원짜리 제육정식은 기가 찼다. 상추 5~6장이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제육이 김치와 함께 담겨나왔다. 제육만으로는 양조절이 미안해서 함께 볶은 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그릇에 적당히 담긴 반찬 몇가지를 식판에 모아 내줬다. 가격을 얼마를 받는가는 주인의 권한이니 개의치 않는다. 손님도 재방문에 대한 결정 권한이 있으니 상관없다. 소꿉장난같은 백반을 다 먹었지만 밥은 반공기나 남았다. 반찬을 더 달래서 반공기를 다 비울까 고민보다는 빨리 집에 가서 어제 해둔 불고기를 먹고 싶었다. 계산을 하면서 보이는 주방에는 젊은? 남자 주인 혼자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1시가 넘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10개의 테이블에 먹고 일어선 빈 자리는 주로 1인이었고, 혼자뿐인 알바는 그걸 치우지도 않았다. 치우지 않아도 될 만큼 어제 점심은 끝이었고 저녁 준비도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다.
선택과 집중이다. 신혼부부 소꿉장난 하듯이의 상차림을 주라는 뜻이 아니다. 메뉴가 여럿이면 뭐 하나도 푸짐할 수 없다.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된장찌개는 뚝배기가 큰데 왜 청국장은 작아요,와 같은 시비에서 벗어나려면 하향평준화여야 한다. 그래서 메뉴가 많을수록 뭘 시켜도 실패 확률이 크다. 주인은 “아무거나 다 맛있어요”라고 말하지만, 그걸 해석하면 “정말 잘하는게 있으면 이렇게 많은 메뉴를 팔겠니?”로 들린다. 대평리 시골마을에 인테리어도 없는 후진 식당은 도시 사람들이 찾아가서 줄을 서고, 세종시 아파트 숲에 둘러쌓인 코앞 상가에 카페같은 인테리어의 식당은 길 건너 앞동 사람만이 손님의 전부다. 식당에 입지가 강조되던 시절은 끝났다.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끼리 뛰어들어 빨간 전쟁을 하면서 거리의 액자 노릇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