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보이지도 않아요
1년에 300번쯤은 되지 싶다. 그게 어느덧 나에겐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아내에게 어떤 식당을 보여줄까, 내심 설렌다. 물론 매일 새로운 식당을 찾는 건 아니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나에겐 식당을 선택하는 몇가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온리원이면 좋지만 최소한 메뉴가 간소한 집을 찾는다. 둘째가 자리가 특이할 것이다. 외졌거나 사악하다고 할 정도로 입지가 나쁜 곳이면 흥분이 된다. 셋째가 주차장이 있을 것.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는 질색이다. 건물에 지하 좁은 주차장은 최악이다. 마지막으로 넷째가 거의 희박하지만 짧게 문을 여는 식당이다. 점심만 문 여는 그런 집이면 심지어 메뉴 수와도 상관이 없는데 대체로 그런 집들이 또 메뉴가 적다. 나는 이렇게 4가지 기준에서 찾는데 아쉽게도 아내의 취향은 이때는 없다. 아내와 외식은 소중하지만, 하루의 외식은 나에겐 일이기도 한 탓이다. 식당공부를 위한 일터인 셈이다.
새로운 식당은 절반쯤이다. 나머지는 갔던 곳에서 재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땐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 기준이다. 이미 갔던 곳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파는 집을 주로 간다. 그런 아내가 언제나 환영하는 메뉴가 쌀국수다. 그리고 그때 내가 머리에 떠올리는 집은 입지가 사악?한 공주의 쌀국수집이다. 분반차 정다운아지트가 상호다. 왜 이런 상호인지는 주인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거의 달에 한번 이상은 가는 집이다. 그렇게 자주 가지만 우리는 주인과 모르는 사이다. 우리가 적극적이지 않은 내향형 인간이기도 하지만, 주인도 사실 주방에만 있으니 손님을 아는 건 그 시간대의 알바생들일 것이다.
20분쯤 걸리니 가깝다. 가게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까지 가더라도 역시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언덕?에 있는 탓이다. 나무에 가려진 때문이다. 한 건물 2층에도 식당이 있는데 한번도 그 집은 간 적은 없다. 우리는 오직 토마토쌀국수를 먹기 위해서 갔기 때문이다. 다른 식당은 선택지가 없다. 늘 만석인 주차장에 모든 손님이 분반차를 찾는 건 아닐 거다. 2층의 한식당에도 손님이 있기에 그 주차장이 모자랄 것이다.
간판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 식당을 차렸는지 물어보지 않았으니 모르지만, 그건 사실 관심이 없더라도 그만이다. 그런 식당은 도처에 흔하기 때문이다. 자기 집이라서 차릴 수도 있고, 돈이 없어서 도심에서 밀려밀려 떠밀려 거기만 식당을 낼 형편일 경우도 있다. 다행인 것은 이제는 그런 곳도 찾아오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핸드폰이 생기면서부터, 핸드폰이 지도가 되어 지면서부터 , 핸드폰이 컴퓨터가 되어 정보를 검색하게 되면서부터 사실 입지의 나쁨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처럼 외진 식당만 찾아다니는 이상한 손님들도 많기에 그게 손님을 당기는 묘한 매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색 쌀국수를 판다. 소고기 쌀국수와 투톱이다. 게다가 가격도 싸다. 한그릇에 만원이 넘어도 그만인 쌀국수를 7~8천원에 먹을 수 있다. 둘이서 하나씩 먹어도 2만원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늘 하나씩이거나, 토마토로 2개를 먹기에 2만원 이상을 지불한 적이 없다. 곁들임으로 시킬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외식을 하기에 늘 거하게 먹지 않는다. 내일의 외식을 위해서 최소한으로 먹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곁들임 양이 주식 가격을 넘으면 시키지 않는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쌀국수 하나와 분짜 하나를 시키거나, 반새오를 시킨다. 그렇게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는다. 그렇게 먹으면 테이블 단가는 2만원이 넘는다. 좋은 전략이다. 어차피 멀고 외져서 단골이라고 쳐도 1년에 몇 번일 것이다. 그렇게 길게 텀이 있는 단골이라면 비싼 점심을 먹도록 유도해도 나쁠 게 없다. 쌀국수 2그릇 보다는 쌀국수 1그릇에 요리? 1개가 더 낫다. 좋은 기억에 보탬이 될 것이다.
묻지 않았지만, 가격은 왜 이렇게 설정했는지 나는 안다. 왜 쌀국수를 상대적으로 싸게 파는지 안다. 토마토쌀국수라는 이색적인 메뉴임에도 왜 싸게 파는지를 나는 안다. 그래야 분짜나 반새오를 시킬 확률이 높아서다. 7천원짜리 차돌쌀국수라서 분짜 15,000원짜리를 시켜도 겨우 22,000원이다. 1인당 11,000원꼴이다. 8,500원짜리 토마토쌀국수와 12,000원짜리 반새오를 시켜도 겨우 20,500원이다. 착한 주인이다. 양심이 있는? 주인이다. 손님의 지갑을 배려한 가격 설정이다. 그래서 우리부부처럼 쌀국수만 2개 먹고마는 손님에게는 헛장사를 한 셈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쌀국수집은 1인분에 15,000원이다. 가격은 비싸지만 다른 식당에서는 2만원도 받아내는 반새오(분반차는 이것도 싸게 파는 셈이다)를 우리는 그냥 반찬으로 준다. 그래서 둘이서 3만원에 쌀국수 2개와 반새오까지 먹는다. 분반차의 2만원이나, 맛창식당의 3만원이나 별 차이가 없다. 둘에겐 배부르고 든든하다. 이걸 나는 조삼모사론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동수론을 보태어 3명일 때는 2인분만 주문(메뉴 개수로는 3개니까)해서 먹으라고 하니, 결국 1인당 만원에 먹는 셈이다. 1인분 가격은 비싸지만, 지불하는 가격은 싼 묘책을 나는 재주껏 써먹어서 줄 세우는 식당을 만드는 컨설팅으로 타짜가 되었다. 타짜의 기술은 사실 쉽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