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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Dec 31. 2020

쿼카는 쿼쿼카카 울지


    그날, 쿼카에게서 'ㅋ' 12개가 왔다. 이어서

    ― 와아 진짜 미친 동물 아닙니까?!

    그러고는 'ㅋ'이 49개쯤 더 찍혔다. 곧바로 다시 37개가 이어졌다. 너구리는 그 'ㅋ'이 꼭 우는 소리 같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쿼카는 '캥거루목'사(舍)의 막내다. 태어나서 7개월 동안 엄마 배주머니 속에 있다가 이곳으로 입사(入舍)해 올해 2년 차가 되었다. 쿼카에게는 첫 동물원이다. 똑똑하고 재주도 많은 친구인데, 늘 '네, 네, 알겠습니다, 좋아요, 고맙습니다'밖에 할 줄 몰라서 때론 어리숙해 보이기도 했다. 좀처럼 화를 내는 법이 없고 기껏해야 '어머, 이를 어째, 그건 좀 심하네요' 정도가 할 줄 아는 가장 센 표현이었다. 그런 그가 '미친 동물'이라고 했다면 그건 정말 '씨앗을 발아시켰더니 잣 같은 것이 미친 듯이 자랐네!' 정도의 표현인 것이다.


    캥거루목사에는 코알라과, 웜뱃과, 캥거루과, 쿠스쿠스과, 주머니하늘다람쥐과 등 8개 과 41마리의 동물들이 있다. 사향쥐캥거루는 이 동물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캥거루목사를 지켜온 캥거루목사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러나 엄청난 고령으로(사람으로 치면 120세 정도) 살아 있는 역사이나 죽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이인자인 술라웨시난쟁이쿠스쿠스가 캥거루목사의 리더 노릇을 하고 있었다.   


    술라웨시난쟁이쿠스쿠스는 마호가니유대하늘다람쥐를 싫어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마호가니유대하늘다람쥐가 인기가 많아 사육사들의 애정을 독차지한다거나, 따르는 캥거루목 동물들이 많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캥거루목 주머니하늘다람쥐과 동물일 뿐이었다. 술라웨시난쟁이쿠스쿠스는 무슨 이유에선지 마호가니유대하늘다람쥐를 끔찍이 싫어했다. 급기야 마호가니유대하늘다람쥐에게 다람쥐과 막사로 옮길 것을 강하게 권유했다.

    "자네는 다람쥐지 않나?"

    "저는 쥐목(설치목. 다람쥐과의 상위 분류)이 아니라, 캥거루목에 속하는걸요?"


    술라웨시난쟁이쿠스쿠스는 다음날부터 캥거루목사 동물들을 하나씩 불러 동물원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폭언을 퍼부었다. 단 한 마리, 마호가니유대하늘다람쥐만 빼고. 며칠 동안 동물원 전체에 참담과 공포가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쿼카가 불려 갔다.  


    어린것이, 시키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료가 아까운, 라떼는, 하여튼 요즘 것들은, 가정교육을, 딸 같아서, 너 잘되라고, 우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동물원에서?  


    마호가니유대하늘다람쥐는 그날로 다람쥐과로 떠났다.

    쿼카는 'ㅋㅋㅋㅋ'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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