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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Dec 16. 2020

너구리 그루비 댄스


    너구린가요?

    너구리지요.

    너구리가 있군요.

    너구리가 있지요. 특별한... 아니, 특별했었죠. 동물원에 특별하지 않은 동물인 너구리가 있다는 게 특별한 일이라는 말이 아니라, 녀석이 특별했었죠. 춤을 잘 췄어요. 앞발을 들고 리듬을 타다가 흥이 오르면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어요. 수십 바퀴를 돌다 갑자기 딱 멈춰요. 돌던 자세 그대로. 그러면 박수가 터져 나오죠. 비보이 너구리, 팝핀 구리, 뭐 그렇게 불리며 사람들을 끌어모았죠. 테레비에도 여러 번 나왔어요. 동물농장, 놀라운 세상 그런 데서 신기하다고 찍어갔죠. 그걸 보고 녀석을 보러 사람들이 더 몰렸어요. 그런데 녀석의 춤이 춤이 아니라더군요.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거라고, 어딘가 고장 난 거라고, 뭔가 잘못된 거라고, 불쌍한 거라고, 나쁜 거라고, 잔인한 거라고 하더군요. 다시 테레비에 나왔죠. 프로그램이 바뀌고 주제가 바뀌고 음악이 바뀌고 자막이 바뀌고 진행자의 톤이 바뀌니, 다른 너구리가 되더군요. 갇히고 억눌려 슬픈 춤을 추는 불쌍한 너구리, 잔인한 인간들.    

    그렇군요... 지금은 춤을, 그러질 않네요?

    늙고 병들었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죠. 이제 춤추지 않아요. 그나마 춤출 때는 신기하기라도 했는데, 사정이 어쨌든 간에 신나 보였는데, 명물이었는데...... 이제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죠. 하루 종일 누워 있는 너구리를 보러 동물원에 오는 사람은 없어요. 누가 한낱 너구리를, 그것도 꼼짝도 않는 늙은 너구리를 보겠다고 돈을 지불하겠어요? 흔해빠진 게 너구린데...... 자연스럽지 않아요. 그렇지 않나요?

    동물원에 너구리가 있는 게요?

    자연스러운 게 좋지 않겠어요? 자연스러운 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고, 아름답겠죠? 너구리는 너구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겠죠.

    설마...... 저 너구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누구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순 없어요. 게다가 너구린걸요.

    너구리긴 하지만, 그래도... 너구린데...

    그럼요, 너구린데요.  


    너구리는 구석에 누워 있다. 앞을 보고 있지만 앞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앞을 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떠나갈 때 잠시 뒷모습을 보는 듯했다. 다시 앞을 본다. 앞을 보고 있는지, 앞을 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


    밤이 되자, 너구리가 춤을 추었다. 절도 있거나 날렵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뭐랄까... 매우 '그루비(groovy)'한 춤이었다. 리듬을 가지고 논다고 해야 할까. 음악이 없었지만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너구리는 음악 없이, 춤으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모든 동물들이 너구리의 그루비한 춤과 음악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손(앞발? 아무튼)에 맥주가 한 병씩 들려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느긋한 댄스파티는 매일 밤, 꽤 오래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끝이 머지않았다. 너구리가 의도했고, 모든 동물들이 응원한 결말. 파티가 끝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울지 않는다. 너구리의 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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