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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Apr 09. 2021

좋아하는 OO을 찾아서


    좋아하는 OO을 잃어버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OO을 놓친 건지 OO이 스스로 떠났는지 토토는 알지 못했다. 더 큰일인 것은, OO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OO을 떠올리려 할수록 OO의 부재가 뚜렷해졌다. 눈을 감아보았다. OO(일지도 모를 어떤 것)이 형체를 이루는가 싶더니 이내 온갖 생각들이 무섭게 달려들어 엉망으로 뒤엉켜 버렸다. 걷다가, 좋아하는 멜로디가 들리는 듯하여 귀를 기울이면 거리의 소음에 섞여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몇 번 반복하고는 그만두었다. 모아둔 '기대'를 전부 지불해야 겨우 낱개의 '희망' 한 개를 살 수 있는데, 그마저도 휘발성이 강해 금방 날아가고 확실한 '절망'이 남았다. 기대가 모이는 속도는 더뎠고, 어리석은 '구매' 몇 번만에 아예 소진되고 말았다. 


    ***   


    "좋아하는 OO을 잃어버렸어."

    잠보는 토토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OO이 돌아오거나 최소한 희망을 살 수 있는 기대가 생겨났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있잖아."

    잠보의 손이 토토의 옷 안으로 들어왔다. 목적지가 확실한 움직임이었다. 최단 경로로 빠르게 이동했다. 토토는 한 발 물러섰다. 잠보의 손이 멈췄다. 미처 옷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바람에 틈이 생겨 토토의 몸 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소름이 끼쳤다. 바람 때문인지 잠보의 말 때문인지 모르겠......

    "싫어?" 

    알겠다. 토토는 잠보와 헤어졌다.


    ***


    "꼭 찾아야 해?"

    준세는 잔을 닦으며 말했다. 가게는 문을 닫을 시간이 지났다. 손님은 토토뿐이었다. 준세를 붙잡아두는 것 같았지만(실제로 그랬다) 토토는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OO이라니까?"

    "좋아하는 OO이니까. 꼭 찾아야 하는 거냔 말야."

    그게 무슨...... 토토는 멍해졌다. 취한 탓이 아니다. 겨우 블러디메리 한 잔을 마셨을 뿐이다. 준세는 잔을 내려놓고 토토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비니를 뒤쪽으로 살짝 올렸다. 거의 제자리에 있었지만 왠지 이마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일까 생각이 들 때 준세가 웃는 듯한데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하는 OO이 아니잖아. 찾아버리면. 더 이상."   

    토토는 가방을 들며 일어났다. 바 의자에서 내려왔으므로 눈높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준세야,"

    "응?"

    "그러니까 니가 친구가 없는 거야."

    "고마워." 준세가 웃는다.

    "아유, 변태 저거." 


    가게를 나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토토가 웃었다.

 

    ***


    며칠이 지났다. 몇 달일 수도 있고 몇 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토토는 더 이상 좋아하는 OO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찾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토토는 그냥,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기"곤 했을 뿐이다. 당연히 밥을 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도 했다. 좋아하는 OO은 그 사이에 여러 번 토토에게 와 머물다가 떠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토토는 아무렇지 않았다. 왔는지도 갔는지도 모를 때도 많았다. 좋아하는 OO은 매번 다른 얼굴로 왔고 다른 방식으로 토토를 안았다. 그러므로 매번 설레고 따뜻하다 쓸쓸하고 차갑게 식었다, 익숙해졌다.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OO이 찾아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기" 부분은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가사에서 빌려왔다. 갚을게,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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