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글로 대신했다.
얼굴을 보면 말이 닫혔다. 얼굴을 마주 보는 일부터가 드물었다. 이따금 말이 들려 고개를 들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옆얼굴을 마주했다.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글로 말을 대신하는 건 그들이 찾은 최선의 대화법이었다. 휴대전화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었다. 시선이나 표정, 말투와 소리의 높낮이 등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것들이 대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언어 외적 표현은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표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소통을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대화의 목적은 용건을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글은 효율을 지향했다. 용건을 전하는 데 꼭 필요한 글만 주고받았다. 불필요한 표현, 단번에 이해되지 않거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피했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경우는 허다했다. 침묵하건 맞서건, 싸움으로 이어지긴 마찬가지였다.
― 그건 '비'언어가 아니라 '반'언어적 표현 아닌가?
그 말(글)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알량한 지식을 은근히 과시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그러면서도 점잖은 척 이성적인 척하는 그의 태도를 비난했다.
―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이런 때마다 한결같은 그의 대처에 그녀는 치를 떨었다.
글은 편리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숨이 가빴다.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발이 여럿 달린 벌레가 뒷목에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지만 가쁜 숨도 열도 벌레도 잦아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차분한 척 재수 없게 말을 옮길 수 있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술이 떨렸다. 가슴을 치다 앞섶을 움켜쥐었다. 그는 가만히 보았다. 말없이 들었다. 글에서도 그녀가 보이고 들렸다. 벌레가 그의 눈두덩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침착하게 두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 나 회의.
― 미안.
글은 편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