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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Dec 16. 2020

문자의 편리


    말은 글로 대신했다.

    얼굴을 보면 말이 닫혔다. 얼굴을 마주 보는 일부터가 드물었다. 이따금 말이 들려 고개를 들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옆얼굴을 마주했다.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글로 말을 대신하는 건 그들이 찾은 최선의 대화법이었다. 휴대전화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었다. 시선이나 표정, 말투와 소리의 높낮이 등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것들이 대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언어 외적 표현은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표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소통을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대화의 목적은 용건을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글은 효율을 지향했다. 용건을 전하는 데 꼭 필요한 글만 주고받았다. 불필요한 표현, 단번에 이해되지 않거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피했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경우는 허다했다. 침묵하건 맞서건, 싸움으로 이어지긴 마찬가지였다.     


    ― 그건 '비'언어가 아니라 '반'언어적 표현 아닌가?


    그 말(글)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알량한 지식을 은근히 과시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그러면서도 점잖은 척 이성적인 척하는 그의 태도를 비난했다.

    ―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이런 때마다 한결같은 그의 대처에 그녀는 치를 떨었다.   


    글은 편리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숨이 가빴다.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발이 여럿 달린 벌레가 뒷목에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지만 가쁜 숨도 열도 벌레도 잦아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차분한 척 재수 없게 말을 옮길 수 있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술이 떨렸다. 가슴을 치다 앞섶을 움켜쥐었다. 그는 가만히 보았다. 말없이 들었다. 글에서도 그녀가 보이고 들렸다. 벌레가 그의 눈두덩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침착하게 두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 나 회의.

    ― 미안.


    글은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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