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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Apr 08. 2021

작가의 말


    ―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오래된 생각입니다. 전부터 막연히, 글 좀 쓴다는 칭찬이든 빈말이든, 그런 비슷한 말을 듣는 날엔 노트에 빼곡히 제법 구체적인 얼개를 짜기도 했습니다. 이미 써 놓은 서문, 작가의 말, 프롤로그, 심지어 소표지 다음에 나오는 '누구누구에게'만 수십 개입니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뭐야?" 아내가 옆에 와 앉았다. 

    "응, 슈퍼 작가 K. 신인 작가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저 사람이 우승이야." 

    

    ― '언젠가 쓰겠지'와 '내가 무슨 책을'은 일종의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고 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쓰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문장들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뭐래는 거야?" 

    "핑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거지. 하여튼 글쟁이들이란......"


    ― 그렇지만 쓰기 위해서는 이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안전하게' 이별할 수 있게 도와준 '슈퍼 작가 K'의 관계자 여러분, 시청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무엇보다, 치열하게 쓰고 지우고 고쳐쓰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한 소중한 동지 여러분께, 텍사스 전기톱으로 이 트로피를......

 

    "상금이 얼만데?" 

    "1억." 

    "1억?! 당신도 나가보지 그랬어?" 

 

    ― 첫 책이 나온다면 소표지 다음에 이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박 똥개에게' 그다음 장에 '실은 나의 영원한 '처음'인 봄나물 양에게' 괄호 열고 '언제나 엄마가 1번 네가 2번이야, 미안' 괄호 닫고. 첫 책은 아내에게, 그다음 책은 아이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저런 데를 뭐하러 나가."

    "저런 데? 저런 데? 아~ 당신은 이미 작가님이시지이. 이미 책 한 권 내셨지이, 16년 전에, 독립출판 한다고 여기저기 돈 빌려서. 그 돈 갚느라 내가 얼마나 외주를 했는지 알아? 그거 아직도 베란다 창고에 마흔 권 넘게 있는 건 알고? 이사할 때마다 짐이야. '저런 데'라도 나가서 상금이라도 벌어오는 게 그렇게 모양 빠지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대출금이라도 갚으면 좋지 않겠어?"

    나갔었다. 1차 예선에서 탈락. 

 

    ― 저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쓰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책을 쓰고 싶습니다. 첫 책을 쓰고 나면, 다음 책을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계속 쓰고 싶은 게 제 바람이자 다짐입니다. 

 

    계속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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