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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한나 Mar 02. 2023

어플에서 전여친을 만나다.

"나랑 하자."

이전 내용이 궁금하다면 (브런치는 2편 3편이 삭제된 상황)


1편

https://blog.naver.com/sohappy1288/223013632758

2편

https://blog.naver.com/sohappy1288/223017997933

3편

https://blog.naver.com/sohappy1288/223023215491


1. 출발

2월의 마지막 날, 대구를 떠나 서울로 출발했다. 어머니가 터미널까지 태워주셔서 나름 여유로운 이별길이었다. 부모님과의 식사도 큰 갈등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정말 떠나는구나... 안녕 집.


2. 상경

평소 4시간 정도 소요되던 상경길은 삼일절의 여파 때문인지 6시간이나 걸렸다. 저녁이 다가올수록 차들이 빨간 흥분을 드러내며 도로를 가득 막아섰다. 삼일절은 SNS에서만 의미가 살아있을 뿐 현실에서는 그저 휴일에 불과한가 보다. 고속버스 옆 자리엔 금방 시장에라도 다녀온 듯한 짐들을 한 가득 짊어진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호흡할 때마다 심각한 오징어 냄새가 났다. 진짜 오징어는 아닌 것 같고 안 씻어서 나는 냄새인듯 했다.

어쨌건 의자 접촉면에 덕지덕지 붙은 땀과, 냄새와, 소변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서울에 도착했다.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였다.


3. 방황

기숙사 신청을 늦게한 탓에 입주 날짜도 미뤄졌다. 3월 10일, 앞으로 약 10일이나 남은 것이다. 부모님께는 기숙사에 입주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왜 신청을 빨리 안했니, 정말 대책 없구나-라며 노발대발하실 게 뻔했기이다. 부모님이 입금하라며 보내주신 기숙사비는 여전히 내 통장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튼 나는 학교로 갔다. 기숙사에 들어가진 못해도 동아리 방정도는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풍경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집도 없고, 배도 고프고, 반겨주는 사람도 없구나. 그렇다고 허망하거나 울컥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혼잣말이 는 정도.

동아리 방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한숨 돌렸다. 부모님께 기숙사 잘 들어갔다는 말도 잊지않았다. 생각보다 동아리 방도 아늑했다. 책상도 있고 짐을 둘 공간도 충분했다. 거미 한 마리가 꼼지락 기어가다가 멈춰서 눈치를 살피는데 누가 누구를 죽일쏘냐- 싶어서 그냥 모른 척해주었다. 잠들 기엔 이른 시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공간. 벗어나야겠다 싶어서 데이팅 어플을 켰다. 새로운 사람들이 견고한 벽돌처럼 쌓여있었다. 역시 서울.


4. 만남

안녕하세요 :-)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둘 다 얼굴이나 몸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둘 다 하늘 사진이었네- 연예인 같은 비주얼들 속 허접한 풍경 사진, 그게 더 돋보였던 걸까. 아니면 "외로운 사람끼리 맥주나 한 잔 해요"라는 소개글이 끌려서일까. 아무튼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온도는 차지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 4캔에 만천원인 맥주 더미를 주머니에 우겨넣고 어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현이었다.

5. 이유

우리는 그냥 걷고 있었다. 말 한 마디 없었는데 그녀는 뭐가 웃긴지 몇 번씩 피식 웃긴 했다.

"왜요."

"아냐, 서울 왔나보네."

"네, 방금."

"그럼 오자마자 여자 찾은 거야?"

"..."

"대단하다 참."


아현은 가장 최근에 사귄 사람이다.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꽤 먼데 그럼에도 참 많이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러다가 금방 질렸다. 이유는 없다. 그냥 질렸다. 일단 질리니까 이유가 생겼다. 근데 그녀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우리는 서로 연락도 없이 헤어졌다. 싸운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해가 지듯 헤어졌다.


6. 하자

"오늘은 하자."

"네?"

"오늘은 하자고. 어차피 그러려고 본 거 잖아."

"......"

"왜? 맘에 안 드니?"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랑 사귀는 2개월 동안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그리 길진 않은 시간이지만 만난 지 몇 분만에도 하는 나로서는 아주 긴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분출하면 마음도 날라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뭐 결국, 안 해도 마음은 떠났다. 그냥 할 걸- 이란 생각도 안 들었다. 몸을 섞는 데 마음이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마음이 떠난 상대와 몸을 섞을 마음은 없었다. 근데 이 사람이 갑자기


"그럼 해. 한 번은 해야지."

-라니.


"막무가내네요. 원래 안 이랬던 거 같은데."

"내숭 떨 필요있니? 뭐 이젠 마음도 없는데."

"누나는 마음이 없는데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더 편하게 할 수 있지."


사랑하는 사이끼리 하는 행위를

사랑하지 않게되면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


7. 안녕

"근데... 너 나 진심으로 좋아하긴 했니?"

"...... 네."

"근데 왜 나랑은 안 했어?"

"좋아하니까요."

"좋아하면 안 하니? 아껴 먹어?"

"말 참... 이상하게 한다..."


"됐어." 그녀는 손에 쥔 맥주캔을 전부 쏟아 부었다. "안 꼴리면 그냥 가자."

어이가 없어서 그걸 지켜보며 내 맥주나 홀짝였다. 찌그러뜨린 빈 캔은 청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며 콘크리트에 나뒹굴어졌다. 아현은 내 어깨를 스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쁜 새끼"


그리고 뒤돌아서 대조적으로 방긋 웃었다. 손을 흔들며 안녕- 인사했다.


나는 얼어붙은 듯 그녀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

다가 남은 맥주를 원샷했다. 달려갔다. 빠르게 달려갔다. 그녀 앞에 멈춰섰다.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장소 있어요?"



그녀의 자취방에서 뜨거운 섹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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