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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탁소리 Mar 08. 2022

프랑켄슈타인

   M도서관에서 근무하는 i는 쉬는 날이면 서점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책이 쌓여 있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쉬는 날에도 책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누가 물었더니 i는 이렇게 대답했다.      

   “깨끗한 책을 만지고 싶어서 그래. 난 새 책 냄새가 좋거든.”


   지금 i는 얼룩이 진 데다 책 귀퉁이는 장을 넘어갈 때마다 접혀 있고 일부 페이지는 뜯겨 나간 책을 앞에 놓고 망연자실해 있다. i가 아끼던 책이다. 지난달 반납되었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책이 누더기가 되어 서가에 거꾸로 꽂혀있는 것을 조금 전 발견한 것이다. 최근에 대출 반납된 기록은 없었다. 누군가 도서관 안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심호흡을 한 다음 책 귀퉁이에 접어놓은 것을 펴고 뜯겨 나간 부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글은 이어지는 걸로 봐서는 그림이 있는 페이지만 뜯어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책을 살려보기로 했다. 다른 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빌려 사라진 페이지를 확인한 다음 복사를 해서 해당 페이지에 붙였다. 얼룩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읽을 수는 있었지만 모양은 보고 싶지 않을 만큼 흉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책을 새로 살 수 있다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사다 놓고 싶었으나 절판된 책이었다. 누더기가 되긴 했지만 읽을 수는 있으니 서가에 도로 꽂기로 했다. 이 날 이후로 이 책은 제목보다는 '누더기'로 바뀌어 불렸다. 그마저 얼마 후에는 '누더기'라는 이름마저도 잊혔다. 뜻밖의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이용자가 평소보다 적어서 i는 동료들과 번갈아 도서관 장서의 배가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 '누더기'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책이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i는 책 등에 인쇄된 낯선 제목에 순간 멍해졌다가 책을 집어 들었다. 레이저 프린터로 인쇄된 글자는 '나, 괴물’이었다. 원래 제목과는 비슷하지도 않은 제목이었다.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책 형태의 조형물로 보였다. 여기저기 다른 책에서 뜯어온 것이 분명한 그림과 사진 이미지 그리고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텍스트들이 책의 형태로 묶여 있었다. 책의 분량을 보니 꽤 많은 책에서 뜯어낸 것 같았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많은 누더기들이 존재함이 분명했다. 텍스트들은 시의 몇몇 구절과 소설의 일부 문장들이었다.      

   ‘아! 이 참혹한 기형이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지 그때는 온전히 알지 못했다.’ (프랑켄슈타인, 151쪽) 친절하게도 어떤 책에서 인용했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이 날부터 직원들의 관심은 누가 이 괴물 책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인가에 쏠렸다. 일단 책에 묶여 있는 것들이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책들의 대출반납 기록을 확인하여 겹치는 인물을 찾기로 했다. 괴물 책은 의외로 볼 만했다. 모양새는 흉했지만 이미지들이나 텍스트들이 새로운 구조로 얽히면서 미술 작품 같기도 했고 내용만 보면 누군가의 작업 노트나 독서기록 같기도 했다.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없었지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잠깐은 멈춰 볼 만한 매력이 있었다. 사라진 누더기에 대해서는 이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직원들은 '나, 괴물’을 돌려가며 읽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찾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후보가 3명 정도로 좁혀졌지만 수사는 웬일인지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찾아왔다. 앞머리가 눈을 거의 가리고 있는 데다 모자까지 꾹 눌러쓰고 있어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그가, 자료실 문을 열자마자 들어와서는 그 책을 찾았다. 원래의 책도 아니고, '누더기'도 아니고, '나, 괴물’을 찾는 그. 바로 i와 동료들이 한동안 열심히 찾았다가 언제부턴가 잊고 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였다. i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그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작품'을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 당당함에 할 말을 잊은 i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나, 괴물’을 내밀었다. 그는 그 책을 받아 들고는 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료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나서 몇 분쯤 흐르고 나서야 i는 아차 싶어서 그의 뒤를 따라갔지만 도서관 정문 부근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보낸 거야?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물었어야지.”     

   동료들이 다그쳤지만 i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러게, 자기 '작품'이라기에 나도 모르게…”

  다음 순간 정신이 돌아온 i는 <도서관 장서 훼손 금지!>라고 커다란 문구를 출력해서는 자료실 여기저기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이상하게 허전한 느낌은 뭐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음 날, '나, 괴물’이 있던 자리에는 ‘누더기’가 돌아와 있었지만 그걸 누군가 알아채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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