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의자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작가와 백수는 한 통속이라는 말로 위로를 삼고 살았던 내가 동네 부근의 한인마켓에서 일하게 됐다.
글을 쓰는 지난 10여 년 동안 쓸 만큼 돈이 모이면 방안에 틀어박혀 글을 쓰다가 돈이 떨어지면 닥치는 대로 일을 찾는 내게, 또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온 세상의 직업에 대해 경의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마켓만큼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 장소도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같이 일하는 분들이 내가 소설가라는 것을 전혀 몰라보니 인지도 없는 무명작가라고 한탄한 일만은 아니었다.
일전에 어느 시인이 호텔에 무상으로 묵고 싶다고 제안했다는데 이해되지 않았다. 이상주의자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할 곳이 없겠는가. 일자리를 가리니 없는 것이지.
헐리우드 부근의 한 유명 레스토랑은 종업원들의 인물이 배우처럼 잘났다. 그 식당에 가면 그들의 잘 빠진 모습을 힐끔거리는 것도 한 재미다. 거의가 모델이나 영화배우 지망생이라고 한다. 그들의 인생에 언제 볕이 들지 모르겠지만 별을 꿈꾸는 처지는 나와 같다.
마켓에서 손님을 만나는 일은 나름 즐거웠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내가 세일이 적성에 맞는지도 모른다고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고민이란 게 다름 아닌 잔돈계산이다. 10전 짜리로 계산한다든지, 25전을 채워달라고 한다든지 하면 식은땀이 난다. 5전과 10전의 모양이 비슷해 헷갈리기 때문이다. 자투리 동전을 25전으로 바꿔달라는 손님이 원망스러웠다. 전날 마감잔액이 다소 틀렸다는 매니저의 말을 듣는 날이면 그날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은 불도저로 밀은 것처럼 멍했다. 거스름돈을 줄 때 몇 번씩 확인하고 내줬는데 도대체 누구의 손으로 엉뚱하게 흘러갔단 말인가.
내가 소설가라는 게 들통이 나던 날, 공교롭게도 나는 또 다른 일터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는 건 쉽지 않았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트레이닝이 끝난 직후여서 욕을 먹는 일을 감수해야 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다양한 직업을 전전해야 하는 나로서는 받아들여야 할 곤혹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마켓에서 일하는 동안 몇몇 문인들을 만나야 했고, 예전에 알던 사람들과 마주쳐야 했다. 어떤 이는 멀찍이 나를 바라보고는 모른 척 사라졌다. 내가 소설가라는 것을 어떤 분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라 덤덤했다. 소설가가 소설로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마켓에서 일하는 모습이 측은해 보인다면 그건 잘못된 의식이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노동을 포기한 병든 의식이다. 서울역 노숙자들 중에는 중소기업 사장이나 중견 간부출신들이 적지 않다는 통계는 사사하는 바가 크다.
한 달 만에 끝난 일자리인데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정이 들었다. 어눌한 한국말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던 다니엘에게는 곧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며, 우수에 찬 눈매로 내년에 비행기 정비학교에 갈 거라던 저스틴도 자신의 바람대로 잠시 머물다 떠날 것이다.
뜨내기처럼 사람들이 오가는 마켓은 도를 닦는 도량이 따로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밥물이 끓어오르는 냄새를 닮은 소박한 꿈의 냄새도 맡아 보았다. 나이가 60세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황 언니의 쿨한 웃음이 내내 그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