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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Jul 21. 2019

다람쥐를 기다리는 이유

로스앤젤레스는 다람쥐의 천국이다.

요즘 내게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나무기둥과 비슷한 털 색깔을 지닌 다람쥐를 기다리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계단 난간에서 기대어 화단을 내려다보게 됐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사각형의 화단을 중심으로 건물이 뺑 둘러 지어졌다. 그곳에 어쩌다 날아든 벌새처럼 다람쥐가 출현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는 다람쥐의 천국이다. 길 가다가 다람쥐와 마주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에 나타난 다람쥐가 신기해서 후다닥 집에 들어가 호두를 집어 녀석에게 던져주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나타난 다람쥐 한 마리


녀석은 그 후로도 가끔씩 아파트를 찾아왔다. 어떤 날은 내가 없는 사이에 녀석이 다녀갔는지 계단바닥에 땅콩껍질이 즐비했다. 누군가 녀석에게 먹이를 준 모양이다.


  경계심이 많은 녀석은 조심스레 다가와 내가 하나 씩 던져주는 호두를 입에 물고는 멀찍이 간격을 두고 앉아 야금야금 먹었다. 어찌나 소리에 민감한지 내가 바스락 몸을 움직이면 화들짝 입에 호두를 물고는 나무기둥으로 올라갔다. 흰 자위가 없는 까만 눈동자는 나를 보는지 안 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얼굴의 각도를 봐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나마 어떨 때는 내게 등을 돌리고 돌아앉아 오물거렸다. 내게 관심도 주지 않고 넝쿨 사이를 헤집는 날은 필시 배가 부른 날이리라.


  나는 다람쥐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녀석더러 보라는 듯 걸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며칠 후 밖으로 나가려던 딸이 소스라치게 놀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문 앞에 다람쥐 한 마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녀석, 다람쥐가 내 집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호두를 던져줬더니 다람쥐가 발을 구르며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기쁠 수가! 다람쥐가 나를 알고 있다니!  다람쥐가 우리 문 앞에 있었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이 알아주는 게 뭐 그렇게 흥분할 일이라고.


 “다람쥐가 나를 아는 것 같아!”


  총명한 녀석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복도 끝에 있는 우리 집 현관 앞에 어떻게 있을 수 있냐는 내 논리에 식구들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다람쥐와 교감이 이루어졌다고 확인한 후부터는 식구들이 모이는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다람쥐 이야기가 식사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나무토막 같았던 꽉 막힌 저녁식사 자리가 다람쥐 때문에 흐뭇한 시간이 되었다.


  큰 호두를 주면 먹지 않고 입에 물고 화단으로 달려가서 파묻고는 턱, 턱 앞발로 나뭇잎을 덮더라는 다람쥐의 관찰기는 단연 인기였다. 저녁을 먹으며‘콩람쥐’라는 녀석의 이름도 만들어졌다. 녀석은 자기의 이름이 뭔지 알 리가 없겠지만.


  좋은 이야기도 말다툼으로 끝을 맺던 불편한 저녁식사 자리가 아니던가. 영어를 쓰는 자녀와 영어가 서툰 부모가 함께 하는 저녁식사의 어색함은 겪어본 사람만 아는 이민가정의 속사정이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두 딸들에게 아마도 내가 손주 재롱이 보고 싶은 모양이라고 넌지시 건넬 수 있는 빌미가 만들어졌다. 오늘도 다람쥐를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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