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내게 일어난 이야기

by 누런콩

아빌리파이와 세로켈이 든 약봉지를 뜯는다. 약효 때문인지 1시간 이내에 잠이 든다. 밤 9시가 약 먹을 시간이니 적어도 10시에는 취침하는 것이다. 얼마나 잤나. 얼마나 규칙적으로 생활했나. 하루에 한 번 빠뜨리지 않고 샤워는 했나.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에겐 중요하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의 주 보호자인 엄마는 내 수면시간에 집착한다. 적어도 8시간은 자야 하는데 30분이라도 덜 자면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엄마는 불안해한다.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을 의심해 왔다. 엄마는 성질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엄하기도 했다. 내가 누군가와 다투고 돌아오면 엄마는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며 나를 나무랐다. 엄마는 나를 예뻐하지 않아, 그저 책임감과 체면 때문에 바르게 키우려는 것뿐이야.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간 내게 일어난 일로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나를 아낀다. 미안하게도 우리 집 유일한 남자애인 둘째나 늦둥이 막내보다 더 그렇다.


회사에서 교육이 시작됐다. 일주일이 지나고 그다음 일주일간은 아예 잠을 자지 않았다. 희한하게 몸이 버텨줬다. 눈은 피곤한데 몸은 말짱했다. 자려고 누워도 생각이 멈추질 않아 잠들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알고 있는 내 병명은 양극성 장애가 아니었다. 내가 위험한 상태인지 몰랐다. 입원하기 전날에는 잠을 자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기절하듯 잠들어버리면 영영 제정신을 못 차릴 것 같다는 공포감이었다. 거실로 나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가 운전대를 잡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진료받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선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 누웠다.

생각의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 갔다. 뇌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저히 아침까진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새벽 2시쯤이었다. 응급실에 갔는데 안정제를 놔주지 않는다고, 이제 더는 내 의지대로 잠들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있다간 내 발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신과를 10년 넘게 다녔고 진단명은 모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119에서 문자가 왔다. 내 핸드폰을 위치 추적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갈 수 있는 응급실 목록을 주었다. 여러 군데 전화해 봤지만 주사를 바로 놔준다는 병원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니던 병원 응급실에 다시 한번 갔다. 이번엔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뒷좌석에 앉혔다. 병증이 몸 밖으로 드러났다. 그다음부터는 일이 순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나흘 동안 입원했다. 금요일에 입원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퇴원했으니 딱 나흘이었다. 덤으로 12년 만에 진단명을 얻었다. 나는 양극성 장애, 다른 말로 하면 조울증이라고 했다. 내가 일주일간 잠을 못 잔 건 조증 증상이라고 추측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내 치료에만 전념했다. 평소 같았으면 병원에 있는 사람들과 말도 하고 지냈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병원에서 주는 밥을 꼭꼭 씹어 삼키고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걸어 다니면서 운동했다. 간호사가 주는 약을 달갑게 먹고 제때 잠들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잠자는 게 가장 힘들었다. 아직도 잠자는 게 어렵다. 다행히 회사에서 병가를 내도 된다고 했다. 부디 쉬는 동안 수면 패턴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내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조현병이 있는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이야기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읽혔다. 대학을 마침과 동시에 정신분열 증상을 겪었던 나. 엄마는 그간 딸내미에게 판사 노릇을 했다며 가슴을 쳤다. 처음 발병했을 땐 세브란스로 갔다. 보호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병동에서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가며 스물이 넘은 나를 병간호 했다. 홍콩에 있던 아빠가 한국으로 날아와 며칠을 내 곁에 있었다. 아빠는 나를 업고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밀란 쿤데라와 톨스토이의 책은 내게 너무 어렵다며 장난도 걸었다. 그때 마주쳤던 아빠의 눈물 고인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다른 병원에 혼자 입원했을 때 면회 온 엄마는 나를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엄마가 가식을 떤다고 생각했다. 나를 여기에 집어넣어 놓고. 나를 빼주지도 않을 거면서. 그때 엄마의 무너지는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제는 엄마와 성당에 갔다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잠을 못 자는 게 위험신호라는 걸 나는 몰랐어. 조증이라는 걸 책으로만 읽었지 겪어보진 않았으니깐. 나한테 조증이 있다는 것도 나는 몰랐잖아. 진단명이 나와서 속이 다 시원해. 세어보니 12년 만이야. 친구가 바이폴라bipolar라고 하니까 “간지난다”고 했어. 웃기지? 웃기네. 밤바람이 서늘했다. 가슴께에는 뜨뜻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와 그 어떤 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프고 회복하고. 이제는 내가 양극성 장애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 가족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지켜내고 싶다. 내가 잘 지내야 우리 엄마가 산다. 엄마에게 별일이 없어야 내 동생들이 안심하고 생활한다.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부정적인 단어들도 그만 내뱉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작게나마 숨 쉴 수 있도록 나는 안간힘을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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