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빠는 나를 살렸다

by 누런콩

아빠 사인을 모른다. 나는 아빠가 자살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자꾸 아니라고 한다. 목매단 게 사인이라면 머리 위치가 그렇게 될 수 없다고. 거실 쪽으로 누워있었는데 그게 어떻게 자살이냐고. 아빠가 다니던 회사를 햇수로 10년 다녔다. 아빠는 평직원으로 있다가 단번에 팀장이 되었다. 아빠가 짊어졌을 무게를 알 것도 같다. 그게 너무 버거웠던 것 아닐까?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던 날 협심증이 있던 아빠의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렸던 게 아닐까? 아빠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넥타이가 끊어졌다. 영안실에선 1~2분 내로도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엄마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빠의 사인은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 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현명하고 똑똑한 마누라에 다 큰 자식들은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했다. 느지막이 낳은 막내는 조금 까칠하긴 해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 그런데 큰 녀석, 애물단지 같은 이 큰 녀석이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이제 취직만 하면 앞으로는 탄탄대로인데. 잘 먹고 잘살 일만 남았는데 정신분열이란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 2년 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살았다. 큰애가 자꾸 속을 썩였기 때문이다. 일부러 폐쇄병동에 입원시킨 게 아닌데 자꾸 마누라를 원망한다. 이상한 남자를 만나러 다녀서 핸드폰도 뺏어보고 외출도 금지해 봤는데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공무원 시험에서 그 어렵다는 필기시험도 합격해 놓고 면접에서 이상한 소릴 하고 왔단다. 화가 난다. 큰애가 미워지려고 한다. 마누라도, 내 분신 같은 둘째 녀석이나 귀염둥이 막내까지, 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난 왜 살아야 하지?


아빠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나는 아빠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결론은 나였다. 아빠 속을 썩일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정신을 차렸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꼭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아니더라도 아마 나는 그즈음 일자리를 구했을 것이다. 아빠의 죽음으로 내가 살았다는 게 죄스러웠다. 갈 곳이 없어 정신병을 얻었는데 직장을 구하니 증상이 완화되었다. 따지고 보면 아빠를 죽도록 사랑한 건 나였다. 마지막 날에도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나였으니까. 그런 내가 오히려 멀쩡했다. 식구들 다 아빠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때에 나만 괜찮았다는 게 이상했지만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애도는 이 정도로 해두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괜찮았던 걸까? 정말로? 정말?

아빠가 나를 살리고 떠난 게 맞다. 지난여름 나는 가족들을 위해 집을 떠나려고 했다. 그때는 엄마에게 현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내 머리론 아무리 따지고 굴려 봐도 돈 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둘째는 코로나를 핑계로 취직을 미루고 있었다. 가족들이 내 벌이에 의존해서 각자의 삶을 꾸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만 없어지면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생각을 했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쯤이야 무섭지 않았다. 진짜로 무서운 건 가족들이 그 교착상태로 쭉 생활을 이어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 회사에 다니는 걸 몹시 좋아한다.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마저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죽음이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다. 감히. 뭣도 모르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내가 10년만 살아도 미치겠는 이런 삶을 내 두 배를 넘게 살았다. 내가 태어났던 1992년에 입사하고 2016년에 퇴직했으니 말이다. 엄마는 나를 낳고 아빠를 보내고 지금까지도 나를 살리고 있다. 이 숭고한 삶들을 감히 내가 평가할 수 있을까? 재단할 수 있을까?


내가 아플 때 나는 아빠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런 바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람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로 믿었다. 아빠가 살아서 엄마를 만나러 와 줄 것이라고. 나는 아니더라도 엄마를 단 1초 만이라도 보러 올 것이라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믿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빠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아빠를 본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그 흔한 동영상 하나 남아있지 않다. 아빠의 표정을 이제는 모르겠다. 안쓰러워하는 건지 대견해하는 건지 웃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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