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항공 쪽은 쳐다도 안 봤을 거다. 관제사나 조종사, 운항관리사 등 이 업계에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려면 죄 야간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야 뭐 야간근무가 대수였을까. 졸업하고 2년을 놀았다. 어디든 나를 받아주기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뛰쳐나가겠다는 심정이었다. 다행히 항공사 한 군데서 합격 통지를 받았고 나는 올해로 7년째 같은 회사의 녹을 먹고 있다. 야간근무로 몸이 썩고 있다고 불평불만을 쏟아 내면서도 ‘먹고 살 만해지니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가?’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래도 묘하게 열이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밤을 꼴딱 새우기 위해 대낮에 잠을 청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몸을 일으켰다. 붕 뜬 기분에 아무것도 못 하고 시간을 죽였다. 보상심리로 회사에서 글을 썼다. 동이 트면 녹초가 되어 퇴근할 예정이다.
유럽 사람들은 뻑하면 파업을 한다. ‘까짓것, 우리도 하면 되지’ 싶어도 ‘우리’는 못한다. 회사에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노조’(노동조합)가 없기 때문이다. 노조에 가입하면 각종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상사와의 면담은 물론 동료들의 비웃음 어린 시선까지. 다 무시하고 애써 가입했다 해도 이름뿐인 어용 노조다. 노조 없이 일하는 건 갑옷을 입지 않고 전장에 나서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비겁하게 나서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마저 견뎌야 한다. 10년 전 대학생일 때 누군가 “삼성에 노조가 없다는 걸 안다면 유럽 사람들은 ‘삼성 불매운동’을 할 거야”라고 하는 걸 들었다. 당시 거대 자본의 대표 격인 삼성에 대한 나의 인식은 꽤나 안 좋은 편이어서 ‘역시 삼성’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어차피 그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내 일이 됐다. 이것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이게 다 사람이 없어서다. 6일을 연달아 근무해야 하는 것도, 숙직실 하나 없는 건물에서 밤을 꼴딱 새워야 하는 것도 다 회사가 겨우 돌아갈 만한 인원만 고용했기 때문이다. 빵빵한 노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는 늘 ‘위기’라면서 직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그렇게 맨날 위기일 거면 차라리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뻥). 사람을 오도 가도 못하게 하고(회사가 나를 붙잡은 적은 없지만) 꾸역꾸역 영업을 이어 나가니 회사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손님은 싣고 짐을 안 실었다느니, 기내식에서 도자기 파편이 나왔다느니, 연일 안 좋은 기사가 뻥뻥 터진다. 주가도 오를 생각이 없다. 이 회사엔 미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 서글프다. 바득바득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건 이놈의 회사, 언젠가 떠 버릴 희망을 놓지 않고 싶어서다. 회사에 더 깊은 정이 들기 전에 빨리 떠나야 한다.
어쩌다 회사는 내게 이런 의미가 되었을까? 직장이 없을 땐 노동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건 욕심이 아니었다. 벌어서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그럴싸한 직장을 가지고 싶어 했던 건 욕심이었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보다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것이 내게 더 중요했다. 어떻게든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나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꿈에 그리던 직장은 아니어도 적당히 구색은 갖춘 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모르겠다. 내게 왜 이렇게 불평불만이 쌓이는지 말이다.
하루에 4시간 일하고 월 1000을 번다면 나아질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째지긴 한다. 그래도 나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을 찾아낼 것 같다. 투덜거리면서도 지금의 일을 놓지 못하는 건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다.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한다는 게 가능할까? 예전엔 그렇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회사와 나를 철저히 분리해야 덜 소진될 수 있다. 나는 회사번호로 전화가 오면 모른 척한다. 거들떠도 안 본다. 그건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어쩌면 회사에 더 오래 얽매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