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십 대의 마지막 여름에 또다시 이별을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언니와 대화 중에 언니가 넌지시 내게 물어왔다.
-"형부 친구 소개받을래?"
-"형부 친구? 누군데?"
나에게 형부는 매우 이미지가 좋았기에 언니의 질문에 나는 설레었다. 형부 친구들은 만나서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기에 내심 기대가 됐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나도 한 번 봤는데 괜찮더라. 다음에 한번 넷이 자리 만들어볼까?"
-"좋지."
그렇게 사진도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형부의 오랜 친구 중 한 명이라는 말만 듣고 소개를 받기로 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약속이 잡혔다.
약속 날이 됐다. 오랜만에 예쁘게 단장하고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긴장됐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나는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오늘을 즐기고 오자고 생각했다.
전철을 탔어야 했는데 토요일 저녁시간대의 서울은 차가 많이 막혔고 나는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언니와 형부가 자리에 함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력질주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뛰어오는 바람에 땀에 나기 시작했다. 숨 고르느라 바빠서 첫인사를 어떻게 주고받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 예상과 달리 형부의 친구는 생각보다 훈남이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워서 눈도 잘 못 마주치고 계속 대각선에 앉아있는 형부만 쳐다보며 얘기한 것 같았다. 긴장해서인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음식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1:1이었다면 덜 부끄러웠을 것 같다. 내 첫 소개팅 자리를 언니와 형부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평소와 다르게 더 뚝딱거렸던 것 같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이동하는데 언니와 형부가 눈치껏 자리를 빠져줬다. 하지만 이미 긴장을 잔뜩 해버린 탓에 분위기가 쉽게 바뀌진 않았다. 둘이 있으니 더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서로를 알아가며 대화도 나누고 서로 첫인상이 좋았기에 번호도 교환을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그는 쭈뼛쭈뼛하며 내 옆으로 오더니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선물상자를 내게 건네주었다.
-"별건 아닌데 마카롱 좋아한다기에 준비해 봤어요." 부끄러워하며 그가 내게 말했다.
-"우와 이게 뭐예요? 저는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너무 감사해요. 잘 먹겠습니다."나는 대답했다.
소개팅을 꽤 해봤지만 첫 만남에 선물을 들고 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여자들은 거창한 게 아니라 사소한 것에 감동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건 상대가 그 누구여도 분명히 호감도가 상승할만한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소개팅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첫 만남에 작은 선물을 준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