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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22. 2024

애인은 직장인, 나는 학생

나의 결혼생활. 2

임용고시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학교 후문 카페에서 아내와 마주 앉았다.

군대 가기 전 미팅 자리에서 밥도 안먹고 헤어진 이야기부터 군대에서 겪었던 일, 학교 생활까지 더 할 얘기는 있지만, 더 할 시간이 없을 때쯤 말했다.

-임용고시 보고 결과 나올 때까지만 우리 사귈까요? 합격할 건 알지만, 합격하면 좋고, 혹시 기대한 결과가 안나오더라도 누가 옆에 있으면 좋잖아요.

-그럴까요?


그렇게 아내와 사귀기로 했다. 

계산을 한 것도,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날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

아내는 말이 없는 편이고, 나는 말이 많았다. 아내는 내가 말을 많이 하고 끌어주는게 좋았다고 했다. 결혼한지 2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내는 말이 많지 않고, 나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아내와의 대화에서 말이 많은 편이다.


아내가 임용고시를 보던 날, 아내와 함께 재수를 하던 동아리 친구를 격려한다는 핑계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시험장을 찾았다. 

시험 잘보라고 하고 나오는데, 가슴이 '좀' 떨렸다.


'당연히' 아내는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1차 시험을 합격하고 그해 11월 30일에 아내의 집 앞 골목에서 첫키스를 했다.

2차 시험까지 합격하고 2월에 신규 임용되어 3월부터 초임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아내는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3학년이 되었다.


아내는 발령 첫달은 통근을 하고 이후부터는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통근을 하는 한달동안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내의 집앞에서 아내를 기다렸다가 함께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아내가 기차를 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도서관으로 갔다. 아내가 퇴근 후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기차역이나 도서관에서 만나곤 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아내를 통해 들은 얘기인데, 장모님은 내가 별로였다고 한다. 막내딸을 대학원까지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고, 임용고시가 된 후에 주변에서 선이 몇 개나 들어왔었다며, 보아하니 가진 것 별로 없고, 취업이나 제대로 할 지도 모르겠고, 그저 걱정만 되더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통근하는 한달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차역까지 출근을 함께 해줬다는 말을 듣고는 '어쨌든 가족들 밥은 안굶기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 진로에 대해 했던 얘기가 많았다. 내색은 한 적 없지만 어릴 때부터 공부로는 아버지 기대를 저버린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은데, 그것도 결국 말짱 꽝이 된 셈이다.

아버지가 내게 처음 해보라고 권했던 건 세무공무원이었고, 그래서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지금은 없어진' 세무대학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두번째 했던 건 무조건 공무원이 되어라 하는 것이었다. 공무원은 죽어도 싫어요라고 했더니, 혀를 끌끌 차시더니 그러면 공기업이라도 가라라고 하셨다. 결국 아버지가 생각했던 직업조건이라는 건 안정성이 첫째 조건이었던 거같다.


나중 얘기지만, 공무원이든 공기업이든 못가거나 안갔지만, 아버지 며느리로 교사 공무원을 데려왔으니 절반은 한 셈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내와 내 부모님의 만남은 내 대학 졸업식 때가 처음이었는데, 두 분 모두 많이 좋아하셨다. 동그란 얼굴에, 인상이 좋고, 차분한 것이 맘에 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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