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요 슬기씨!

by 소화

나에게는 있다.

무엇이?

내가 묻기 전에, 나의 안부를 묻는 학부모가.


여름 방학이 반쯤 지났을 무렵

개학도 딱 그만큼의 날수가 남아있던 날 때쯤.


“선생님, 잘 지내나요? 우리도 잘 지내요.”

라며 아이와, 친정엄마와 바다에 간 사진을 내게 보냈다.


그리고 또다시 일주일 뒤쯤

“선생님, 잘 지내나요? 우리도 잘 지내요. 기차역에 킥보드 타고 있어요. “ 라며 안부를 전했다.


슬기 씨는 우리 반 힘찬이의 어머니다.

캄보디아 사람 속보린(가명)으로 살다가

2021년 가을 슬기라는 이름이 생긴 힘찬이 엄마.


나는 힘찬이와 3년을 함께 하고 있다.

아이가 1학년 입학 하던 날

“아이 엄마가 캄보디아 사람이라 한국말을 전혀 못해요. 그러니까 모든 연락은 고모랑 해 주세요. 저는 일하느라 타지에 있어요.”


‘전혀’라는 말에 사로잡혀

처음 몇 번의 연락은 아빠가 주고 간 아이의 고모와 연락을 했다.


그러길 몇 번

“이제 제가 힘찬이와 이야기 나눠야 할 것은 어머니랑 할게요. 한국말 못 하셔도 괜찮아요. 엄마도 학교 처음 보내보는 거니까 처음이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배우시면 될 것 같아요. 힘찬이 동생도 있으니까, 힘찬이 학교 보내시면서 학부모가 되어가는 연습 겸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그 후 나는 힘찬이 엄마에게 연락할 일은

쉬운 말로, 되도록 짧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마음을 감추기 위한 의례적인 포장 언어를

걷어내고 난 전달 사항은 정말 간결했다.

그런데 오히려 깔끔해졌다.

아이의 하루를 전달하면서도

어떤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서로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그 간결함에 진심 어린 사실의 감정과 단어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아이가 자랄수록

학부모 슬기씨도 점점 자라고 있다.

설명해야 하는 것도 줄어들고

이제는 그것을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한다.


문자메시지 내용도 길어지고,

가끔은 학교 일정에 질문도 하신다.


어떤 날 밤은 내게 집이 어디냐며

방금 바다에서 조개를 잡아왔는데

나를 주고 싶다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동차를 사려고 하는데

계약서를 들고 와 읽어 달라도 하신다.

한술 더 떠

나는 자동차 판매 분과 전화 통화를 하며

슬기씨가 혹시 놓친 서비스가 없는지 꼭 챙겨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슬기씨와 나 사이에는

교사와 학부모라는 거리가 아닌

여자와 엄마라는 공감이 더 자리했다.


일하다 갑자기 쓰러진 아이들의 아빠를 대신해

시간을 쪼개어

마트에서,

짜장면집에서 일을 하던 그녀에게는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 학교 통학버스 안전요원


직업이 하나 더 생긴 만큼

그녀의 시간은 더 바빠져

걷고 뛸 시간도 없이 날아다녀야 할 수도 있지만


멀리 타국에 와서 작은 시골 마을에 갇혀 지낸 그녀가

이 버스를 타고 있는 동안만큼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잠시라도 통학버스가 그녀의 마음 여행길이 되어

굽이 굽이 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그녀의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 주길 바란다.


힘을 내요 슬기 씨.


오늘 오후에는

슬기 씨의 하루가 너무 고단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먼저 연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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