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현 Jan 11. 2022

가지 못할 졸업식

끝내, 하지 못한 것에는 미련이 남고.

  몇 번의 졸업식 중, 고등학교 졸업식에 아빠께서 오지 못하셨습니다. 치질수술(…) 때문이셨습니다.(아빠 개인사 공개, 죄송합니다.) 그… 수술인지라 오래 서있지도 못하시고, 회복하셔야 하니 못 오셨는데 저도 그냥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때는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헌데 아니었습니다. 손에 꽃다발을 든 친구들 사이에 빈손으로 서 있는 게 얼마나 뻘쭘한 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보다 못한 친구 부모님께서(이 친구는 친척들까지 다 와서 꽃다발이 서너 개는 있었습니다.) 꽃다발 하나를 쥐어 주셔서 그걸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친구들도 많았고, 선도부 하면서 친해진 후배들, 선생님들과 어우러져 사진을 찍으며 알찬 시간을 보내고, 졸업식 뒤 친구들과 뒤풀이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이 한 번씩 마음을 찌릅니다. 아빠께서 정말로 제 졸업식에 오고 싶어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에 취업한 회사를 다니면서 2년 차부터 병행하여 산학협력 대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4년을 다녀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 학교에 처음 생긴 유일한 야간학과다 보니 작은 규모로, 그리고 약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족이 오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졸업식 하루 전날까지도 아빠께서 꼭 오고 싶으시다고, 버스 타고 내려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빠 가면 안될까? 졸업식 보고 싶은데.” 몸도 안 좋으신 분께서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오고 싶으시다며 며칠 나절을 말씀하시는 데 너무나 마음이 아렸습니다. 그냥 오시라고 할 걸 그랬나. 아직도 후회가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못 갔던 것도 마음이 너무 아프셨다며 대학교 졸업식 잠깐 10분 하더라도 가서 보면 안 되냐고 애타게 물으시는데 왜 오시라고 말씀을 못 드렸을까요. 단 하루, 반나절도 되지 않는 그 시간을, 이렇게 오래도록 후회하고 아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졸업식 보실 기회를 다시금 드리기 위해 대학원을 가야 할까요…?(미래의 소현: 그것만은…!!)


  살면서 기념하게 되는 날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은 생일을 딱히 챙기지 않습니다. 가난에서 비롯된 절약입니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생일 케이크 사진이 몇 개 있는 걸로 미루어 보아, 절약이 맞습니다. 아빠께서는 자꾸 1년 치 가족 생일을 모아서 한 번에 축하하자고 하십니다. 그럼 오빠와 저, 어른이 되어 사회의 일원이 된 남매는 떨떠름해하면서도 동참합니다. 이것 즘은 안 아끼면 안 되나 싶은 겁니다. 그래도 우리 아빠 이제 하고 싶으신 것 다 하세요! 하는 마음으로 맞춰드립니다. 우리는 유난스럽게 서로가 애틋한 가족이니까요.


  얼마 전 아빠와 장을 보러 갔다가 블랙프라이데이로 싸게 나온 전동드릴 세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빠께서 한참을 탐이 나는 눈빛과 손길로 만져 보시고는 내려놓으셨습니다. “이게 참 좋은 건데… 그리 쓸 일 없겠지…?” 하는 아련한 말과 함께 말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갔다가 잠깐 친구 보러 다녀오겠다는 치밀한 알리바이를 남기고 달려가서 사 왔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하나가 남아있었습니다.(또 후회할 뻔했습니다.) 그걸 집에 가서 슬쩍 건넸더니 아빠께서 “뭐 이걸 사 왔어!” 하시면서 손은 잽싸게 박스를 해체하고 계셨습니다. 이리저리 조립해보고 만져 보시더니 너무 좋다며 눈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이거 불빛도 나온다. 빛을 비추는 각도가 아주 정확하네. 비트 종류가 백가지가 넘는구먼!” 하면서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생신 선물이라며 드렸는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과거에도 공구를 선물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남매가 비상금이라며 쥐어 주신 몇 백 원을 안 빼돌리고 모아서 1000원짜리 드라이버 2개짜리 세트를 생신 선물이라며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뭘 고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어린이들의 선물에 아빠는 환하게 좋아하셨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드라이버를 잘 쓰고 계십니다. 그랬던 어린이가 훌쩍 자라서 8만 원짜리 해머드릴 세트를 선물해 드리다니… 지능적으로 아빠를 일하게 만드는(…). 아무튼 그렇게 감격해 애틋해하고 있었는데 아빠께서도 같은 순간을 떠올리시더군요.


  이래서 오래 살아야 합니다. 삶에는 기념해야  일도, 남겨야  소중한 순간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야 떠올려 보지만  모든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달큼합니다. 일이 고될  꺼내어   있는 기억들입니다. 그때 지었던 아빠의 미소 같은  떠올리면 힘들지 않게 일할  있습니다.(진짜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기 세뇌의  종류입니다. 꽤나 효과가 좋지만 영구적이지는 않으니 그런 기억을 자주 만들어 장전해두어야 합니다.) 꼭 졸업식이 아니더라도, 잊을  없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이곳 아랍에미리트에서의 파견 근무가 끝나 집으로 금의환향하는 그날도 우리의 기념일이  것이고,  집이 생기는 날도, 그리고 아마 제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어떤 특별한 가족의 기념일이 되어 아빠의 기억에, 그리고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일이  많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빠 저에게 힘을…!

이전 04화 소녀이자 가장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