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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Jan 13. 2022

오지랖

그런데 이제 다정함을 곁들인

    나이가 들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이 건강의 무너짐이라면, 두 번째는 오지랖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내성적이던 소현은 자라면서 점차 사회화가 되어 얼굴이 두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툭툭 말을 걸어서 일행이 당황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처음 보는 아랍인 쉬프트 매니저에게 무표정한 채 장난을 쳐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고, 수영장에서 한 번도 말을 나눠보지 않은 주임님께 대뜸 말을 걸었습니다. 동기와 친한 주임님이라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은 있지만 인사도 나눠보지 않은 사이였습니다. “저기, 안녕하세요. ㅇㅇ이한테 수영 다니신다는 얘기 들어서 인사하고 싶었어요.” 대뜸 말을 걸고는 수영 호흡을 가르쳐드리고 왔습니다. 오래 쉬시면 추우시니 빨리 연습하세요! 하고 도망치듯 나왔습니다만, 여기 아랍에미리트 제가 지내는 곳의 실내 수영장은 물이 몹시 차가워서 조금만 쉬어도 금세 입술이 보래지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콩나물시루처럼 북적이는 지하철에서 모르는 어느 모녀에게 “삼성역에서 내리세요? 저도인데,” 하고는 더 할 말이 없어서 “같이 열심히 내려봐요.” 따위의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것 마냥 말씀드리고는 그분들이 터주신 길을 따라 내렸습니다. 얼마나 웃으시던지, 하지만 저는 광대 체질이라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곤경에 처해 있는 걸 보면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이 점점 잦아지는 것이 오지랖의 확장, 그 증거입니다.


    나이가 들며 점차 부끄러운 게 없어졌습니다. 사실 그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아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데이터베이스에 쌓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말의 반경이 점점 넓어진 것이라고 보면 맞겠습니다. 어린 저는 너무도 내성적이어서 슈퍼 아주머니께 이거 얼마예요? 도 묻지 못하던, 어머… 정말 깜찍하기도 하지. 지금 제가 어린 저를 만난다면 뽀뽀를 쪽 해주고 싶습니다.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어찌나 수줍어했는지요.


    그럼에도 아쉬운 것들이 많습니다. 하고 싶었는데 놓쳤던 일, 놓쳤던 말, 놓쳤던 사람. 용기 내지 못했던 수만 번의 순간들. 그런 아쉬움이 반이라면, 요새는 오히려 그 ‘할 수 있는 말’의 반경이 넓어지며 경계해야 할 것이 생겼습니다. ‘그 말, 그냥 할 걸.’ 이 아니라 ‘아…! 그 말은 하지 말 걸!’의 나날이 많아진 것입니다. 저는 요새 종종 무례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종종 그런 오해를 받기는 했지만 워낙 조심스럽고 수줍어했기에 발언이 적었고, 무례함이 잘 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궂은 장난과 농담을, 가끔은 도가 넘도록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오래도록 몰랐습니다. ‘광대인 것을 즐기는’ 저를 ‘내성적인’ 제가 가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의가 바르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요새는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 대신, 종종 주변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물여섯, 스물일곱에 제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 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들에게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아쉬움이 마음 한 곳을 푹 패서 그 자리가 계속 때마다 비어진 것이 느껴집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소용없다지만, 자그마한 소용은 있는 듯합니다. 제가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는 소용 말입니다. 이 글을 빌어 제가 상처 준 이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전하고 싶습니다. 몇 번을 해도 모자랍니다.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저를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저는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남이 저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 의식하고,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무심했고, 타인의 마음도 제 눈에 제 마음만큼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고 긴 회한입니다. 이 글에서도 저는, 제가, 저의, ‘저’ 투성이입니다. 저는 아직도 저 밖에 보지 못합니다. 태초에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례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저를 만난 뒤에, 마음에 조금의 거스러미라도 없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들뜬 기분을 선물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친구들의 생일파티를 했습니다. 주말에 애써 사서 들고 온 케이크는 아랍인의 입맛에 맞춰져 너무도 달아 먹기 힘들었지만 그저 즐겁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돌아온 뒤 ‘그렇게 보다는 이렇게 말할 걸. 조금 더 다정히 말할 걸.’ 그런 후회가 또 들었습니다. 휴, 저는 아직도 자라려면 멀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하루 배워 나가다 보면 어느 날에는 제 마음에 드는 제가 있지 않을까 조금 기대해 보고 싶습니다. 다정하고 섬세한 오지랖을 가진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는 날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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