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밀려옵니다만
부서지는 파도 소리, 새하얀 갈매기~~~ 모래사장에 짐을 던져놓고 바다로 곧장 달려들어갔다.
“앗 차가워!”
아니, 차갑지 않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몸은커녕 발도 담그지 않았다.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보다는 바다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 눈에 바다가 가득 담겨있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열차 안, 택시 안에서 마스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도착한 부산 해운대. 답답함에 익숙해진 건지,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낯설어 보였다. 아니 질투가 났다. 오랜만에 바다. 바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해 보였다. 예전 그대로의 바다에 온전히 섞이지 못하는 것은 기분 탓일까. 바다에서도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동안 비정상의 상황에 생각보다 많이 적응돼버린 것일 수도 있고. 잠깐의 혼란스러움이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바다를 누릴 수 있다는 기쁨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바다게처럼 해변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다.
파도가 세서 그런지 바다로 뛰어드는 용기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처럼 해변을 걷거나, 해변에 앉아 책을 읽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바닷가는 평온해 보였다.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날의 바닷소리를 간직하고 싶어서 동영상을 찍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 언제고 바다를 보고 싶을 때 꺼내볼 생각으로 말이다.
해가 질 무렵 바다는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서퍼들이다. 서핑의 서자도 모르지만, 파도가 꽤 있는 날이어서 서핑하기에 좋은 날인 것 같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우두커니 서서 서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실내 수영장에서나 간신히 헤엄치는 내게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히어로급 텐션이 아니고는 불가능해 보인다. 스노클링도 목숨 걸고 할 만큼 겁도 많고 운동신경도 없는 내가 가장 동경하는 바다 세계는 서핑이다. 장비도 단출해서 더 쿨해 보인다. 딸랑 보드판 위에 서서 넘실대는 파도를 어찌 상대할까. 몇 해 전 호주에서, 본다이 비치를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 안에 서핑보드를 가지고 탄 승객이 있었다. 흰 민소매 티셔츠에 형광 주황색 반바지, 그을린 피부와 선명한 타투... 창밖의 멋진 풍경보다는 그에게 눈길이 갔다.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지만, 그 버스 안에서 제일 멋져 보였다. 서핑보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서퍼들이 탈만한 파도가 생각보다 자주 오지는 않았다. 서퍼들은 보드에 몸을 맡긴 채 적당한 파도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저 정도면 괜찮겠다 싶은 파도가 오면 파도를 거슬러 몸을 세우고 파도와 함께 달리다 이내 물속으로 사라졌다.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파도를 타는 시간은 짧았다. 저 짧은 순간을 위해 물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꺼이 버틸 만큼 짜릿한 기분일까.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저 상상만 해본다.
서퍼들에게 파도란 기회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파도들이 오고 가지만, 그 모든 파도들이 다 탈 수 있는 파도는 아니다. 적절한 파도가 올 때까지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회를 잡아 파도에 멋지게 올라타기도 하고, 때론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의 반복 속에 그들은 끊임없이 파도를 열망한다. 더 센, 더 높은 파도를. 내게 파도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 본다. 위협적이거나 무모한 쪽이겠지. 그런 위험에 섣불리 몸을 맡기고 싶지 않다.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굳이 위기의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을 용기는 없다. 큰 파도 앞에 나는 몸이 잔뜩 움츠려 든다. 만약 서퍼들처럼 파도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라본다면, 그럼 조금은 두렵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그 위험을 즐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바다도 아닌데, 요즘 우리 삶에 파도가 세다. 센 정도가 아니라 무지막지하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지금처럼 하루하루 움직임을 감지할 정도로 변화를 체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심하다. 유튜버들이 만나면 유튜브 이야기만 하고, 유튜버가 아닌 사람을 만나도 유튜브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흐름에 간신히 쫒아가고 있지만, 너무 거친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언제고 날아가 버릴 것 같다. 방송 플랫폼은 급변하고 있고, 우리 같은 사람이 설 자리는 더더욱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변화에 대처해야 할지 슬슬 겁이 난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걸?”이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러지 않겠지, 설마.’라고 했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해.’라고 확신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코로나 19로 시작된 거대한 파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음을 확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강사인 MKYU 대학의 김미경 대표는 지난 1월 22일 이후 강연이 끊겨 버리면서 생긴 변화에 절박한 심정으로 ‘리부트’라는 책을 썼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니, 인공지능이니, 블록체인이니, 듣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용어들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는 그녀는 어쩔 도리 없이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과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찾기 위해 그녀는 코로나 이전의 사업방식을 완전히 초기화해서 리셋했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모두에게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던 해변의 모래사장까지 파도가 덮쳐 버렸다. 온택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인디펜던트 워커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삶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적어도 이 글을 읽으면서 한 번쯤 고개를 끄덕였다면. 어쩌면 우리는 서퍼의 DNA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몸을 바짝 움츠려 보드에 엎드려 있었다면, 이제는 그 방법으로는 파도를 견뎌낼 수 없을 시점이 다가왔다.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높고 거친 파도에 당당히 맞설 수밖에.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즐길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