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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Oct 19. 2018

가보지 않은 길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 가보지 않은 길을 막 선택한 두 남녀가 그 길이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이었음을 깨닫고 경악한다.  사랑해서 결혼하긴 했는데, 여자에겐 비밀이 있고,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최고로 행복한 그 순간에 그들은 상처만 남긴 채 이별을 선택한다. 말 못 할 비밀이 있던 여자에게는 더 두려웠고, 그 사실을 모르는 남자도 역시 두려웠다. 몹시 겁이 나지만, 서툴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았다면 어땠을까. 결혼도, 헤어짐도,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은 물론 없지만. 

영화 '체실 비치에서'. 이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사진 : 씨네21

 스피치 수업 중에 대학생들에게 결혼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이 때문에, 상황 때문에 결혼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일단은 비혼족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대답들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래도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왠지 씁쓸했다. 나, 이렇게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결혼을 한 건가. 한 학생이 덧붙인다. “결혼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힘들 것 같아요.” 결혼은 하겠다니 갑자기 반갑네. 

비혼이 늘어나면, 솔리드의 '천생연분'이란 노래도 사라지는 거 아녀? 사진: KBS

 그렇게 따지면, 나도 우리 부모님 세대 기준으로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결혼은 할 수 있는데, 아이는 힘들 것 같다는 학생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이가 없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남편이 선택한 길이 됐다. 한때는 왜 아이가 없냐는 질문에 시달린 적도 있지만, 요새는 그런 질문을 받아본지도 꽤 오래됐다. 가끔, 아주 가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선배들을 보면 신선한 느낌이랄까. 어제는 쉰에 첫아이를 낳았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이 힘든 육아를 어떻게 견뎌내실지 그것부터 걱정되었다. 물론 축하할 일이 먼저겠지만. 

예전에 참 좋아했던 주윤발도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이번 기부 뉴스로 알았다. 사진:엑스포츠뉴스

 결혼 대신 비혼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육아를 걱정하는 나도, 가지 않은 길에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통해 평생을 의지할 친구가 생겼다는데, 설명할 방법은 없고, 아이가 주는 기쁨이 엄청나게 크다는데,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진정 알 수가 없다. 그 길을 가본 사람들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친절하게, 혹은 다그치며 설명하지만, “그렇겠지...”라는 반응 외에 별다른 리액션을 줄 수 없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혼 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니, 아이를 가져보지 않았으니,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그 진가를 알 수가 있나.


 아이가 있으면 난 어떤 엄마였을까 상상해본다. 무심하게 스웩 있는 엄마? 아이를 쫓아다니며 완벽하게 챙기는 엄마? 글쎄... 이도 저도 아닌 엄마가 되지 않을까. 오랜만에 엄마인 친구들을 만났더니 이런 생각도 해보네. 한 아이도 고될 텐데, 쌍둥이를 야무지게 잘 키우는 친구는 이제 제법 여유마저 느껴진다. 쌍둥이 엄마 말로는 닥치면 다 할 수 있다고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말이 그렇지, 잠 못 자서 힘들다고, 끼니를 제때 먹지 못해 기운이 없다는 그녀의 말이 아직도 생생한데... 쌍둥이 엄마도 그렇고,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참 대단하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걸어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존경스럽다. 엄마라... 솔직히 나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영화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 남자도 육아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해 준 1985년 영화. 사진 : 민중의 소리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처럼, 작가가 되는 일도 나에겐 가보지 않은 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막막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처럼 말이다. 영감을 찾으려고 애쓰기도 하고,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고뇌에 빠지기도 한다. 요즘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부딪힐 때마다 자꾸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다. 마침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한 정용준 작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길을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며, 멈추지 말라고 한다. 글 쓰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계속 쓰다 보면 뭐라도 된다고 하니, 아... 이거 참 계속 가야 되는 건가. 이 말을 진심 붙잡고 싶다.  

소설 '프롬 토니오'를 쓰신 정용준 소설가의  말만 믿겠습니다~  사진 : 경상일보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신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인간은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으므로, 바로 여기에 인간의 고뇌가 있다고 고백한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두 갈래, 혹은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이 쉽지 않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자꾸 내 선택을 돌아보지 않고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다. 조금은 서툴고, 마음속에 흔들림도 계속 생기지만,  조바심을 내지는 말자. 프로스트는 한숨으로 미련을 표현했지만, 나는 미소 지으며 말하고 싶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았다고. 그렇게 당분간은 꿋꿋이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어느 길로 가나요? 사진 : 중부일보

 P.S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는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라고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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