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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Jul 06. 2016

로즈마리

병식의 이야기

병식과 선화의 입술이 마주 닿았다. 병식의 혀가 이내 선화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갔다. 뒤이어 병식의 손이 선화의 몸을 더듬는가 싶더니 원피스 위로 길게 난 지퍼를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선화는 병식의 손을 그대로 두었다. 둘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열린 원피스 속으로 들어간 병식의 손은 선화의 가슴에 닿았다. 


선화가 살짝 몸을 움츠렸다. 병식의 손이 봉긋한 양 젖무덤을 고루 주무르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완전히 반쯤 내려온 지퍼는 그대로 두고, 손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선화의 허벅지를 잠시 쓰다듬던 병식의 손은 이내 가랑이 사이를 탐하기 시작했다. 선화는 느릿하지만 완고하게 병식의 손을 밀어냈다.


병식은 포기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재차 선화의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갔지만 선화는 마찬가지로 병식의 손을 밀어냈다.


몇 번을 그런 식으로 헛물만 켜던 병식은 이내 선화에게서 떨어졌다. 멋쩍은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건넸다.

      

"그만 집으로 갈까?"

"네. 그래요."     


병식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이내 차는 선화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병식은 오피스텔 입구에서 선화와 작별인사를 했다.


"일찍 자고, 내일 연락해."

"그래요."


병식은 그녀를 안아주고 가볍게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선화는 병식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들어갔다. 병식은 그대로 돌아서서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병식의 나이 서른둘에 친구의 소개로 선화를 만났다. 병식은 소개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다. 허나 나이를 먹을수록 어째 자연스럽게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고, 신중해지다 보니 새로 연애 상대를 만나는 일이 아주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결국 병식은 나이 서른둘에 처음으로 소개를 받아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몇 번의 실패 후 선화를 만나게 되었다.


소개로 처음 보는 누군가를 만나 호감을 느끼는 것이 병식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병식은 선화를 만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소위 애프터라고 하는 두 번째 만남을 여자에게 제안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한 호감만으로 연락하기엔 부담이 컸다.


제삼자의 소개를 통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연애에 목마른 둘이 서로 연애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확실한 전제를 가지고 만나는 것인데 두 번을 만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와 다름이 없다. 그럴 경우 반드시 세 번을 만나야 하고 네 번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교제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애당초 그런 부담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다 보니 계속되는 만남에도 지쳐가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소개팅이란 것도 관두자는 생각을 할 때 즈음 선화를 만나게 됐다.


선화는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었다. 예뻤다. 귀여웠다. 허나 서구적인 미인이라기보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얼굴인데 첫인상이 참 선하고 순박해 보였다. 처음 만나는 상대의 외모에 집착하는 것은 실은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 반응이다. 처음 보는 사람의 외모 외에 다른 것을 잣대 삼아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그것도 내면이나 성격이라면 더욱 그렇다. 첫 만남에 성격이나 내면을 재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는 분명 거짓말이거나 속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병식은 선화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도 좋았다. 그녀의 여린 손가락은 병식의 속칭 페티시를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차분하고 조용한 선화의 모습,  어떤 답을 하든 흥분을 하거나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는 모습,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와 말투, 조심스러운 동작 하나하나 모두 사랑스러워 보였다. 병식은 처음으로 소개로 만난 여자에게 두 번째 만남을 제안했고, 선화도 그가 그리 싫지 않았는지 병식의 애프터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진 뒤, 병식은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2년 만에 처음으로 떨리는 고백을 했다. 사실 좀 더 일찍 고백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병식은 그녀와 세 번째 만나던 날부터 선화에 대한 감정을 확신하고 고백에 대해 고민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그녀가 더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번 고백을 마음먹은 이후론 매번 만날 때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용기를 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잠들기 전 생각할 땐 별 것 아닌 고백이었지만 막상 만나서 얼굴을 보면 그게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니 관계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선화가 달아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고백했던 그 날, 선화를 오피스텔에 배웅해주었다. 선화를 집에 올려 보내고 돌아서는 순간 병식은 이제 또 무얼 핑계로 그녀와 만나자고 할지 고민했다. 그렇다. 그야말로 확실히 정립되지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그녀에게 고백을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병식은 집에 올라간 선화를 다시 불러냈다. 병식은 선화의 손을 잡고 그간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말을 전했다. 선화는 갑작스런 고백에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고백에 응했다. 병식은 선화를 집에 돌려보낸 뒤, 즐거운 기분에 여기저기 전화를 해 자신에게도 여자 친구가 생겼음을 알렸다. 자랑했다. 병식은 그렇게 2년 만에 다시 연애를 하게 됐다. 


병식과 선화는 거의 매일을 만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만난 지 한 달여 만에 첫 키스를 했다. 병식은 고고한 선비는 절대 아니었고 나이도 어리지 않으며 여자 경험이 전무하지도 않다. 당연히 선화에게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시도하곤 했다. 그러나 선화는 늘 확실하게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행동했는데 병식은 의례 남자들이 그렇듯 그런 그녀에게 서운해하곤 했다.


남성성이라는 것이 원체 그렇게 생겨먹은 탓인지, 병식은 그녀가 좀 더 깊은 관계로의 발전을 허락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녀가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신중하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을 깊게 사랑하지 않으며 언젠가 자신과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평소 에로스가 없는 사랑은 반쪽이라고 생각하는 병식이었다. 병식은 육체적인 열정이 없는 사랑은 반쪽짜리, 플라토닉의 위선을 믿었다. 헌데 정작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또 선화는 홀로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단 한 번도 병식을 초대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병식은 선화에게 자신에 대한 애정을 단도직입적으로 묻곤 했다. 그렇다고 차마 선화에게 성관계과 자신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도 없어 그저 자신을 진짜 깊이 사랑하고 있냐는 질문으로 그것을 대신하곤 했다. 선화는 그럴 때마다 병식이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사랑한다고 답해주곤 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선화는 병식을 거부했다. 선화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병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신의 바람과는 차이가 있는 여자. 병식은 자연스레 깊은 사랑은 육체적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었고, 그동안의 연애 역시 모두 그래 왔다. 


차를 몰고 지나가는 도로 옆으로 집창촌이 보였다. 요즘 집창촌은 단속이 심해져서 그런지 바깥으로는 빛이 새어나오지 않는다. 골목 안쪽으로 어슴푸레 보이는 붉은빛과 골목 옆으로 줄줄이 늘어서 주차되어 있는 택시와 승용차들이 골목 안쪽의 분위기를 짐작케 할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선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탐스런 뽀얀 가슴과 적당히 살이 오른 통통한 허벅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강한 충동이 일었다. 병식은 단 한 번도 집창촌을 가본 일이 없었다. 아니 딱 한번 후배의 성화에 못 이겨 가본 적이 있지만 그것은 병식에게 다시는 집창촌을 가지 않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사랑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충동을 해소하기 위한 일시적인 성관계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된 하룻밤이었다. 


깊은 대화나 교감의 전희 없이 그저 배설을 위한 관계는 자위행위보다 더한 허탈감을 안겨주었으며 몸을 파는 창녀의 기계적이고 직업적인 행위는 아무리 훈련이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 병식에게 거부감을 들게 했다. 그러나 지금 병식은 강한 충동과 더불어 선화에 대한 서운함에 더해 어떤 심술 같은 것이 들었다.


연애라는 것이 비단 성관계를 위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 역시 사랑의 아주 커다란 일부로 생각하는 병식으로서는 그 빈 공간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집창촌이든 다른 여자와의 하룻밤이든 말이다. 단지 해소되지 못한 욕구를 배설하기 위한 자기기만 일지 모르나 병식은 생각을 더 하기도 전에 차를 돌려 집창촌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선화 자체가 병식의 사고방식과는 다르다. 집창촌 역시 병식의 사고방식과는 다르지만 그 둘이 상쇄된다면 그만이다. 줄줄이 주차되어 있는 택시들 때문에 겨우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안쪽을 볼 수 없도록 쳐진 휘장을 거쳐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골목 초입부터 포주가 병식의 손을 잡아끌었다. 병식은 포주의 손을 뿌리치고는 정육점 불빛 사이를 걸으며 여자들의 모습을 살폈다. 기왕 제 발로 여기까지 왔으니 가장 끌리는 여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문 안에서 여자들은 병식을 향해 유혹의 말을 던졌다. 


그렇게 집창촌을 거니는 병식의 눈에 한 앳된 외모의 여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별다른 호객행위 없이 멍하니 유리문 저편에서 바깥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병식은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병식이 다가오자 그때서야 일어서서 유리문을 열고 병식에게 말을 건넸다.      


"오빠. 놀다가요."

"그래. 너 시간 괜찮아?"

"네. 당연하죠."

"그래."

"오빠 카드?"

"현금으로."

"와 오빠 빨리 들어와"     


병식의 팔에 얼른 팔짱을 끼고는 병식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유리문 안쪽은 마치 벌집처럼 방들이 곳곳에 있었고 간간히 여인의 교성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병식을 조그만 방으로 안내하고는 잠시 기다리라며 자리를 떴다. 


병식은 과연 이것이 잘하는 일인지 다시금 고민했다. 이제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선화에 대한 심술과 성욕이 병식의 머리에 가득했지만, 막상 주황색 등이 켜진 좁은 방안, 침대에 가만히 혼자 누워 있으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착하고 예쁜 여자 친구에게 풀지 못한 그 욕구를 집창촌의 창녀에게 푼다는 것이 병식의 이성으로 납득될 만한 일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성욕이 거짓말처럼 가라앉는 와중에 여자가 들어왔다. 아무리 많아야 스무 살 초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오빠 많이 기다렸지?"

"응..아.. 아니." 


여자는 아주 능숙하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벗어내렸고 그 안에 앳된 외모에 걸맞지 않은 통통하지만 굴곡 있는 육감적인 몸매가 드러났다. 시각에 지배당하는 남성성의 숙명이다. 병식은 가라앉았던 성욕이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병식에게 돌아 앉아 풍만한 가슴골을 보이며 병식에게 키스했다.      


"오빠. 옷 벗어."

"응."

"오빠 귀엽다."

"근데 넌 이름이 뭐니?"     


병식은 뜻하지 않게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와버린 질문에 답을 기다리게 되었다.      


"선화요. 예쁘죠? 내 이름."      


이름을 듣자마자 병식은 깜짝 놀랐다. 다시금 병식의 차가운 이성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애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이래서는 안될 것이었다. 병식은 그저 성급했던 것이 아닐까?- 더 미안해졌다. 


선화는 분명 병식을 사랑한다. 그저 조금 느릴 뿐이다. 조심스러운 것뿐이다. 선화의 차분함과 조용함, 알 수 없는 여유로움으로 그것을 충분히 변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그런 면을 좋아해 연인이 됐으면서, 거기에 불만을 가진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병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여자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 말하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돈은 쥐어 주었다. 일종의 수업료로 생각했다.


병식은 선화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진짜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바라지 않으리라. 서두르지 않으리라. 병식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퍼뜩 선화가 얼마 전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허브 화분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자꾸만 잊고 사지 않는다던 이야기. 


병식은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대형마트까지 찾아가 조그만 로즈마리 화분을 하나 샀다.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키우기 쉽다는 이야기에 갑자기 선물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내일 선화와 만나 로즈마리 화분을 깜짝 선물로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졌다.      


다음날 병식은 또 선화를 만났다. 그리고 로즈마리를 선물했다. 선화는 병식의 선물에 기뻐했고 둘은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병식은 집에 선화를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삼주쯤 지났을까.........


병식과 선화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었다. 병식은 답답한 느낌을 애써 지우고 있었지만, 선화는 그저 똑같은 행동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선화를 배웅해주던 병식은 선화의 오피스텔 건너편 창가에 놓인 로즈마리를 보며 선화에게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저거 전에 내가 사준 화분이랑 똑같이 생겼네."

"그러게요."

"내가 산 게 진짜 특이한 거라고 해서 산 건데 화이트랑 녹색 섞인 거라고."

"그래요?"

"응 근데 저것도 그러네. 똑같다 진짜. 하하 흔한 건데 내가 당했나 보네."

"에이 설마요."

"그렇지 뭐. 조심히 들어가."

"네. 들어가세요."

"응."


병식은 선화가 오피스텔 안으로 사라진 뒤, 돌아섰다. 여느 때처럼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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