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줌마, 아줌마는 왜 아기를 안 낳아요? ”
“ 안 낳는 게 아니고,
아직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은 거야.
우리는 모두 기다리고 있어. 아기를 “
“ 그래서 해피를 키우는 거예요. 아기 대신? ”
“ 해피는 그냥 해피야.
아기 대신 해피를 키우는 게 아니라,
해피를 사랑해서
해피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키우는 거야.
만약 해피가 나이가 들고 아파도
예쁘거나 귀엽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해피는 가족이랑 같아.
꼭 사람만이 식구가 되지는 않는거야.
해피는 우리 언니 개 뽀삐가 낳은 강아지인데
새끼 강아지 때부터 우리가 키웠으니까
우리는 모든 시간들을 함께 했지.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
마음을 주고, 정을 쏟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강아지나 식물도 사람이랑 똑같아.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한 거야.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정성을 쏟으면
어떤이에겐 하찮아보일지라도
나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되는 거야. “
낳기 싫은 게 아니고 낳을 수 없는 것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오지않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
나는 아줌마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하고 싶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모두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구에게는 당연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내게 아빠가 그러니까
아줌마랑 나는 뭔가 통할 것 같았다.
“ 아줌마는 왜 나무랑 꽃들을 키우는 거예요? ”
“ 나무나 꽃을 키우다 보면 봄부터 겨울까지
매일매일 내게 무언가를 주거든. “
“ 뭘 주는데요? ”
“ 기다리는 즐거움, 기대하게 하는 설렘,
항상 나를 감탄하게 만들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도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줘.
그건 사람이 줄 수는 없는 거야. “
“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나도 봉숭아를 키울 때 그렇거든요. “
“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과 나무를 키우면
즐거움을 사계절 내내 누릴 수 있어.
너도 봉숭아 말고 다양하게 식물들을 키워 봐.
너희 집에도 나무가 있으면 좋을 텐데. “
“ 원래 우리 집에도 나무가 있었데요.
엄마가 세를 주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내고
방을 만들었어요.
돈을 모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
“ 그렇구나. 하긴 너희 집엔 아이가 네 명이나 있으니
돈이 많이 필요할 거야.
나무가 꽃이 보고 싶으면 해피랑 놀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
대문은 항상 열려있으니까 “
우리 동네 저녁 해는 해피 아줌마의 집으로 퇴근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온 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우리 동네 파수꾼 해피 아줌마
별명처럼 해피 아줌마는 항상 해피하게 웃고 있다.
해피 아줌마 이름은 항상 웃어서 해피가 아니라
아줌마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해피다.
해피 아줌마 뽀삐 아줌마는 친자매
뽀삐와 해피는 모녀관계
두 아줌마는 이름 대신 강아지 이름으로 불리고
자매와 강아지 모녀는 한 집에서 다정하게 산다.
해피 아줌마랑 친해진 건 올봄의 일이다.
저녁 하늘이 보라색,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
그 날의 기분대로 색깔 옷을 갈아입을 때쯤 이면
온 동네에 피리 소리가 저녁노을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늘색과 피리는 낭만적이면서 서로 잘 어울렸다.
윗동네에서 피리 연주가 시작되면 아래 동네 사람들은 꼼짝없이 들어야만 했지만
다행히 연주는 썩 훌륭해서
누구 하나 듣기 싫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듣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오후 5시가 되면 전국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 같은
해가 질 무렵의 우리 동네 오후 시그널이었다.
옥상에 돗자리를 피고 작은 밥상을 펴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파란 하늘이 저녁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 피리 소리가 들릴 시간이 됐는데.
피리를 부는 사람은 분명 잘생기고 멋진 오빠일 거야.
아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일 것 같은데. ‘
고개를 쭉 빼고 윗동네를 올려다봤다.
피리 소리는 천천히 아래 동네로 내려와 모두의 집에 공평하게 지붕으로 마당으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동네 사람들 모두 의식하지 못했지만
피리 소리가 시작되면 온 동네는 고요해지고
우리 모두를 순하고 착하게 만들었다.
나는 저녁마다 피리를 부는 오빠의 얼굴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항상 피리 소리는 2~30분 정도만 연주되었고
연주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서 나는 윗동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소리가 멈추기 전에 얼른 찾아야 해.
피리를 연주하는 오빠의 얼굴을 한 번만 보자. ‘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뛰어올라 숨이 차면서도
나란히 마주하는 모든 집들의 대문과 벽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소리의 시작점을 찾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 한 번에 찾을 수는 없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피리 소리가 시작되는 집을 드디어 알아냈다.
언덕 맨 꼭대기
대문 밖으로 대추나무, 감나무 가지가 나온 연두색 대문 집이다.
‘ 여기 누가 살지? ’
언덕 위쪽은 아는 사람이 없어 연두색 대문에 살고 있는 사람을 잘 모른다.
초인종을 눌러 누가 피리를 부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 안나 아줌마, 언덕 위 감나무랑 대추나무 있는 연두색 집에 누가 살아요? ”
“ 계단 위 연두색 대문 집? ”
“ 네, 언덕 맨 위 계단이랑 가까운 집이요? ”
“ 해피네 집 같은데? ”
“ 해피요? ”
“ 애기 이름이 해피예요? ”
“ 아니, 그 집은 애가 없지.
젊은 부부랑 그 언니가 살지. 그 집에 개들이 많아.
뽀삐랑 해피가 그 자매가 키우는 개 이름이야. 그 집에 나무들이랑 꽃들도 많아. “
“ 저녁에 피리 소리가 그 집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
“ 그래? 저녁마다 피리 소리가 거기서 시작되는구나.
피리를 누가 불지? ”
피리를 누가 부는지 궁금한 나는 해피 아줌마 집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갑자기 열린 대문 틈으로 하얀 털을 가진 개가 쌩하니 달려 나왔다.
“ 해피야, 안돼. 나가면 안 돼. 언니, 잡아. 빨리 해피 잡아. ”
안쪽에서 들리는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
‘ 나가면 안 된다고? 방금 그 개가 해피인가? ’
나도 해피를 잡으려고 달려갔다.
젊은 아줌마가 뛰어나오며
“ 해피야, 해피야 ” 이름을 부른다.
우리 둘은 해피를 잡기 시작했다.
누구냐는 질문도 고맙다는 인사도 나눌 틈도 없다.
해피가 계단을 내려가서 도로 쪽으로 나가면 개들은 차에 치여 죽기 십상이다.
도로로 나온 개들이 차에 치어 죽는 것을 여러 번 본 나는
하얀 털의 해피가 차에 치는 것을 보기 싫었다.
“ 그 개 좀 잡아주세요. ”
아줌마와 나는 달려가며 해피를 잡아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침 앞에서 걸어오던 아저씨가 해피를 잡았다.
아저씨에게 잡힌 해피는 언제 도망쳤냐는 듯 아저씨 품에 얌전히 안겨있었다.
“ 감사합니다. ”
아줌마는 아저씨에게 몇 번이나 인사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 고마워. 꼬마야.
근데 너 왜 얘를 잡으려고 뛴 거야? “
“ 언덕 위 공원에 가는 길이었는데
대문 밖으로 강아지가 뛰어나오는 걸 봐서요.
도로로 개가 나오면 차에 치일 수도 있고
차에 치이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
“ 고맙네. 너 우리 동네 살아? ”
“ 네, 저 계단 아래쪽 아래에 살아요. ”
“ 그렇구나. 왜 혼자 놀이터에 가?
지금 이 시간에? 유치원에 갈 시간인데. “
“ 전 유치원 안 다녀요. ”
“ 왜? ”
“ 엄마도 집에 계시고, 책 보고, 놀이터 가고, 옥상에서 식물 기르고
동네 할머니랑 아줌마네도 놀러 다니면 금방 시간이 가요. “
“ 그래? 특이하네. 너 우리 집에 놀러 갈래? “
“ 네 ”
“ 그래, 우리 해피를 구해줬으니까
아줌마가 시원한 주스 한잔 대접해야지. “
우리는 연두색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 잡았네. 해피
해피야, 새끼를 이렇게 두고 도망가면 어떻게 해?
새끼들 젖도 먹여야 하는데. 넌 누구니? “
“ 응, 언니, 우리 해피 잡는데 도와준 꼬마야.
아랫동네 산데. 꼬마야, 이리 와. 앉아.
너 이름이 뭐야? “
” 저 민현아 라고 해요. “
“ 그래, 현아. 자 이거 마셔라. ”
나랑 같이 해피를 잡은 아줌마가 해피 아줌마다.
주스를 마시고 마당을 둘러보니 종류가 다양한 나무와 식물이 한가득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벽돌과 나무로 화단을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 아줌마, 나무랑 꽃들이 정말 많네요. ”
“ 응, 넌 무슨 꽃 좋아해? ”
“ 저는 봉숭아를 좋아해요. ”
“ 그래? 나도 좋아해. 봉숭아
우리 공통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얘기가 잘 통할 것 같다. 그렇지? “
“ 네 ” 나는 아줌마를 보면서 씩 웃었다.
“ 아줌마, 저녁마다 아줌마 집에서 누가 피리를 불어요? ”
“ 응?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
“ 초저녁이면 피리 소리가 시작되잖아요. 궁금했어요.
누가 피리를 부는지?
연주되는 곡도 너무 좋아서 듣기도 좋고요. “
“ 그래? 듣기 좋아. ”
갑자기 아줌마가 웃기 시작했다.
“ 우리 남편이 들으면 좋아하겠다.
우리 남편이야. 피리를 부는 사람 “
“ 네? 아저씨라고요? ”
“ 응, 우리 남편
우리 남편이 언덕에 있는 동사무소에 일하고 있거든
매일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렇게 피리를 분다.
시끄럽다고, 동네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아무리 말려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불어댄다.
공무원이라 그런지 모든 게 참 규칙적이야.
다들 자기 피리 연주를 좋아할 거라나?
우리 남편 말이 맞았네.
모두들 자기 연주를 좋아할 거라고 하더니. “
“ 아무도 듣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래 동네에서 피리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
“ 그래? 우리 남편 정말 좋아하겠다.
아저씨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네 말 꼭 전해줄게.
내일 5시 넘어서 한 번 와.
아저씨도 좋아하겠다. 널 보면 “
“ 네 ”
다음 날 5시가 넘어
“ 아줌마, 저 왔어요. ” 열린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뽀삐랑 해피가 쌩하니 내 옆으로 달려온다.
“ 해피야, 뽀삐야 ~ ”
“ 현아 왔네. 여보, 얘가 현아야. ”
아줌마가 옆에 서 있는 키 큰 남자에게 물을 건네며 말한다.
“ 안녕, 네가 현아구나. 어제 네 얘기 들었어.
우리 해피 탈출을 네가 막아냈다고 들었다. 고마워.
귀엽게 생겼네. 현아. “
해피 아줌마 남편이다. 키는 175 센티 정도에 마른 체격에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파이고, 착하고 선해 보인다.
“ 잠깐, 아저씨 이거 먼저 연주 좀 하고
시간이 다 됐으니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줄 몰라. “
아저씨가 검은색 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 어? 이거 피리가 아닌데. 이게 뭐지? “
“ 응, 이건 피리가 아니고 팬플룻이라고 하는 거야.
소리가 피리보다 훨씬 부드럽고 더 멀리 전달 되지.
자 들어봐. “
해피 아저씨의 팬 플롯 연주가 시작되었다.
‘ 그래, 맞아. 이 소리야.
아저씨가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이었구나. ‘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은 고등학생, 대학생 오빠도 아니었지만
언덕을 내려다보며 팬플룻을 부는 아저씨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 어머, 현아 얘 봐라. 아저씨한테 반했나 본데.
애가 아주 넋을 잃고 바라보네. “
옆에 있던 뽀삐 아줌마가 나를 보고 호탕하게 웃으면 말한다.
“ 아저씨, 너무 멋있어요. ”
내가 큰 소리로 말하자 피리를 불다 아저씨가 나를 보고 다정하게 웃으신다.
‘ 아저씨, 정말 멋있어요.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
그 날 이후 나는 해피 아줌마네 집으로 매일 출근을 시작했다.